발목 골절수술 11일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주에 있었다.
응? 실밥도 풀기 전에 웬 여행이냐고?
아들생일에 맞춰 준비했던 가족여행을 차마 취소하지 못했다. 한 달 전부터 그날만을 기다리던 아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래서 입원기간 내내 만나는 의사 선생님마다 제주 여행이 가능한지 물었다.
수술 전, 레지던트 1
나: 저 수술하고 제주여행 가는데 가능할까요?
의사: 네, 갈 수 있습니다.
수술직후, 담당교수님
나: (울며) 저 이렇게 아픈데 제주 갈 수 있을까요?
교수: 네, 다들 웃으면서 퇴원해요~ 다녀와서 실밥 풀죠.
퇴원 후 외래 드레싱 중, 레지던트 2
나: (아직 웃지 못함) 저, 나흘 후 제주 갈 수 있을까요?
의사: 음....... 가족들한테 민폐일 거 같은데.
외래 드레싱 다른 날, 레지던트 3
나: (여전히 웃지 못함) 내일모레 제주.......
의사: 잘 다녀오세요~
미국도 아니고 제주쯤은 갈 수 있다는 그들의 영혼 없는 대답은 차후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으니 독자분들은 혹여나 시도할 생각도 하지 마시길.
나는 순진했으므로 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아니, 그저 믿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혼자서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걷지도, 씻지도 못하는 주제에 '골절여행'을 준비했다.
1. 항공사 휠체어 서비스 예약
항공사에 전화하여 휠체어 서비스를 예약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비상구 좌석을 배정해주기도 한다. 수속카운터에서 대기하면 직원분이 휠체어를 가져다주고, 탑승수속, 보안검색대를 거쳐 게이트까지 논스톱으로 데려다준다. 가장 첫 탑승자가 되어 비행기 문 앞까지 인도받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밀착 에스코트는 계속된다. 짐 찾기를 도와주고, 공항 입구까지 바래다준다.
2. 렌터카는 큰 차로
깁스를 한 사람은 발을 올려둘 곳이 필요하므로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목발 역시 짐이다. 혹시나 돌아다닐 요량으로 휠체어를 대여한다면 그것도 짐이니 '무조건' 큰 차로 예악한다.
3. 숙소 휠체어 예약
숙소에도 휠체어들이 비치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나도 신청은 했지만 쓰지는 않았다. 가파른 언덕에 있는 리조트라 저세상 가기 딱 좋은 지형. 리조트 내에서도 차를 이용했다.
4. 목발연습
계속 누워만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려면 힘들 수 있으므로 집에서 틈틈이 목발연습을 한다.
5. 아이스팩
아직 부기와 열감,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수시로 냉찜질을 해야 한다. 돌려가며 쓸 수 있게 여러 개 준비한다.
6. 셀프 드레싱 키트와 복용약
실밥을 풀기 전에는 이틀에 한번 꼴로 상처부위를 소독해주어야 한다. 약국에서 멸균 드레싱 키트와 포비돈을 사서 가면 셀프로 드레싱을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총 4박 일정이어서 두 세트를 챙겼다.
놀러 가서 아프면 고생이니 진통제도 넉넉히 가져간다.
7. 정신무장
아이 생일이다. 아프다고 울고 있을 수 없다! 전투에 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그렇게 나는 4박 5일 동안 리조트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아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