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업으로 삼아야 할까
나의 첫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업으로 삼는 꿈을 꾸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어른들의 평가도 곧잘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재능이 있다"라는 말에 화가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한창 내 꿈이 화가라고 말하고 다니던 초등학생의 나. 어느 명절 때 작은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방으로 부르시더니 사과를 하나 그려 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리 친하지 않은 친척에게 내 그림을 평가받는다는 사실에 잔뜩 겁을 먹고 최선을 다해 사과를 그렸다. 자신감이 없어서 너무 작게 그려버린, 긴장해서 힘이 잔뜩 들어간 그 초라한 사과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을 본 작은아버지께서는 "이 정도면 재능이 있으니 학원에 다녀보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결과물이 평가당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는 잠시 미래를 가늠해보았는데, 평생 이 평가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첫 꿈을 놓아주었다.
두 번째 장래 희망은 피아니스트였다. 나는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친구들과 비교해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꿈도 초등학교 3학년에 끝이 났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니던 동네 학원에 나와 동갑이면서 항상 나보다 한 발짝 진도를 앞서가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학원에서 두 번째로 피아노를 잘 치는 애였다. 나는 학원에서 첫 번째로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를 마음 속으로 라이벌로 점찍어 두고 그 친구보다 더 잘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제 딴에는 노력을 해 보았지만 실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내 라이벌은 내가 아직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현란하게 치는 것을 듣고는 꿈을 접었다. 이 작은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도 피아노 연주로 1등을 못 하는데 앞으로 피아노로 밥 벌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한동안 피아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서 예고 입시를 준비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고 하셔서 내심 우쭐했지만 몇번 콩쿠르를 나가본 결과 나는 무대공포증이 꽤 있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함과 동시에 나는 피아노 연주자의 꿈 역시 완전히 놓아주었다.
세 번째 장래 희망은 작가였다. 이건 내가 학교에서 알아주는 책벌레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나는 특히 소설을 좋아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독자들을 감명시키고 싶었다. 책을 써서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읽기는 잘했지만, 글쓰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힘이 너무 들어간 탓에 글이 어색하고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았다. 때마침 보게 된 동생의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일기를 보고는 "아, 이게 글 쓰는 재능이구나" 깨닫곤 깊은 고민 끝에 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내 마지막 장래 희망은 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기억나지도 않은 때부터 나는 사람의 작동 방식이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내 꿈이 되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작게 싹트는 의문을 평생에 걸쳐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분야를 집착하면서 파보려고 하는 약간 오타쿠적인 성향이 있는 나는 연구가 적성에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원 초창기에 논문을 읽고 공부할 때는 이런 의문까지 들었다.
-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 같아. 근데 돈도 줘. 왜지? 이렇게 재밌으면서 돈 받는 거 말이 되는 걸까? 일이 재밌어도 괜찮은 걸까?
논문 펼치고 공부하고 세미나 듣고 하는 게 다 새롭고 재밌었다. 물론 이 행복한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불식되었다. 연차가 쌓여갈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책임감과 얄짤 없이 다가오는 데드라인, 쉽게 풀리지 않는 연구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연구가 좋다. 이대로 이 생각의 바다에 빠져서 영감들을 주워 모으며 둥실둥실 떠다니고 싶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 매 순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바라는 만큼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가끔 생각한다. 왜 어떤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고 어떤 꿈은 끌어안고 갈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나는 그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딜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나는 주로 예술을 업으로 삼고 싶어 했고, 일찍이 재능의 차이를 깨달으며 포기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일을 하면서 행복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막상 일을 시작했을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연구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연구자가 마주하게 될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가 부진하면 그것은 내가 오기가 생기게 했고, 옆 동료가 좋은 성과를 내면 무작정 시샘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본받게 되는 선순환이 그려졌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대학원이라는 한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험난한 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연구직에 평생 몸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하는 나는 행복하다. 이 공부를 하는 나는 행복하다.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 받는 이 덕업일치의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경험이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을 줄 거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