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결말부터 내놓는 작가

by 밴쿠버이작가

육아에 시달리던 시절 세상을 바꿀 원더우먼을 꿈꾸며 유료결제 연간회원을 끊은 적이 있다.


그 회원권은 유명한 작가의 온라인 강의였는데 온라인 결제를 하기 까진 절대 쉽지 않았었던 기억도 있다. 소리 없이 머릿속에서 고민하다 남들 몰래 나만의 결심을 하고 대단한 다짐을 하듯 지갑을 가져와 결제 카드 하나를 꺼내 16자리의 번호를 누른 뒤, 익스파이어 날자와 카드 뒷면에 3개의 비번까지 누르면 이제 마지막 결제 창에서 묻는다.


진짜 결제할 거야..?

결제 전 한번 더 컴펌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투명 뱀에 물려 온몸에 독이 퍼지듯 (사실 뱀에 물러본 적도 없다)

이상한 두근 거림의 2-초 지나가면 동글동글 로딩이 회전되며 결제 확인을 알린다.


그렇게 얻은 수업 10회.


레슨동안 노트테이킹도 열심히 하고 고개 끄덕이며


‘오 역시 현직에 있는 그림작가들은 다르군’


나도 그들처럼 세상이 원하는 작가가 분명 되겠지란 끝없는 자신감을 주는.. 자기 최면의 시간이 된다. 사실 오랜만에 대학 강의 듣는 기분. 대학교 학비 이후 배움에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 행복했다. 사실 그 기억으로 이런 글도 쓰는 거니깐. 어쨌든, 날 유료 결제까지 하게 만든 그 작가가 나에게 주는 펀치라인은, ‘결말부터 말하는 작가가 되어라‘ 였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문을 열으란 말이였다.




작가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두려움, 신념, 욕구’가 담겨있다고 말하던 그는 이 말도 더 했다. 우리 안에는 메모리 뱅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기억 용량은 사실상 무제한이며,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영구적으로 저장된다고 말이다.


모두…?


또 우리가 21살이 될 때쯤이면 이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체 분량의 100배가 넘는 정보를 영구적으로 저장한 상태라고도 더 했다. 내 머리의 그 큰 백과사전의 기록이 얹혀 있다고 하니, 내 나이 올해 마흔이니, 무릎을 탁 치듯, 왜 내 머리가 무거운지 이제야 알겠다 했다.


또 그녀는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결말이나 펀치라인을 먼저 가진 채 시작하는 스토리는 확실히 다르며, 끝을 잘 알고 가야 중간을 단단히 채울 수 있다고. 뒷 이야기에 한참 빠지다 보니, 신발 한 짝이라도 벗어놓고 온 것처럼 그 작가의 이야기 중 앞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주부라는 게 그렇다. 저녁을 차리다 말고


’아 맞다!
내일 드라이 맡길 옷 지금 문 앞에 갖다 놔야지 ‘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후다닥 현관 앞에 던져 놓은 뒤 다시 불 앞에 서면 내가 지금 요리하는 장조림에 설탕을 넣었나 안 넣었다 헷갈리는 나이가 마흔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메모리 에러인데 어떻게 A-Z까지 있는 대백과사전 따위가 내 머리 위에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뒷 이야기는 왠지 끌려 난 이 책의 결말 먼저 내놓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산타라는 것을.
또 한 해를 준비하는 우리의 산타,
수많은 아이들이 그를 기다리기 때문에
오늘도 살아간다!!!!


란 이런 뻔한 엔딩 말고,


“난 나를 위해 하는 거야.
물론… 아이들이 기다리니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지. “


라고 생각하는 산타.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난 그가 12월 24일날 전세계를 누비며

선물을 나눠 주지만 결국 그 일을 통해 결국 가장 먼저 기쁨을 얻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길 바라는 마음. 산타도 그런 마음을 살짝 품고 있지 않을까? 난 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하루도 기쁨을 위해 싸우고, 무너졌다 일어나고,

또다시 조금씩 망가지고 회복하는 산타. 아이들 앞에서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매일 애쓰는 우리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 제1장을 시작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