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과 재주
챕터 3이라고 적어두고 며칠이 지나자, 나는 다시는 그때의 텐션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산타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게 쓸 자신 있어!
라고 써놓곤… 결국 다시 현실세계에 지내다 보니 다른 생각에 잠겼다. 그럴 수 있지. 크리스마스 내내 산타 이미지와 반짝이는 분위기에 둘러싸여 여유 있으니,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상상력이 폭발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 기운도 잠깐. 지금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어영부영 새해가 지나버린 1월 5일쯤이 되어 버렸다.
12월 내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꿈도 못 꿀만큼 영상의 기운이 계속 이어지더니, 오늘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겨울 포스터 같이 흰 눈이 펑펑 20cm씩 소복하게 쌓이는 그런 눈이 아니다. 비 반, 눈 반. 하늘에서 아이스메이커 기계가 고장 나 만든 눈덩이를 툭툭 던져놓는 정도. 내려오는 동안 힘없이 축 처졌다가 비바닥에 닿자마자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그런 눈. 하늘에서 떠밀려 내려진 눈도 잘못이 없지만 이런 날 밖을 걸어 다니며 사선으로 내리치는 눈살 때문에 나는 내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아, 그래서 산타들이 흰 눈썹을 그렇게 기르나? 살짝 천막처럼 말이다. 섬세하게 눈썹 가위질까지 하는 이유가 이건가?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나오면 안 됐다. 사실 우린 겨울이라는 이름을 빌려 여행 중이다. 굳이 지저분한 눈비를 뚫고 브런치 카페에 들른 거다. 애매하게 젖은 옷은 털 생각보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빈자리부터 스캔 후 우리 부부는 말없이 난 테이블, 남편은 주문 쪽으로 향한다. 그는 간단한 식사 주문 후 몇 발자국 옆으로 비켜가 커피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 쪽에서 웨이트리스가 나아게로 굉장히 당당히 걸어오더니 손에 든 음식 하나를 들고 걸어온다. 왠지 그녀 눈썹에 자꾸 눈이 간다.
어? 벌써 나왔나?
그런데 우리가 늘 시키던 메뉴와 달리 손바닥만 한 갈색 봉지를 내려놓는다. 들여다보니 20개 정도에 해시 포테이토 바이트가 들어 있었다.
응? 무료? 서비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며시 연기가 나고 적당한 기름기가 휘감긴 그것을 일단 눈으로 보며 조심스레 인사 나누던 찰나 커피를 들고 온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허니가 시켰어?
어… 그랬던 것 같은데?
종업원이 추천해서 시켰다는 해시 바이트. 새 기름 냄새, 따끈한 감자 조각들이 붙어있는 감자 향, 갈라진 표면 사이로 스며든 기름, 입 안에서 매콤마요 소스와 함께 퍼지는 바삭 촉촉함이 추운 아침에 안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이건 왜 카푸치노랑 어울리는 건데? 라며 우린 너무 맛있다며 감탄했다. 몇 입 먹다 보니 이제 슬슬 눈에 주위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 옆 테이블 두 남자 앞에 라테 두 잔에 봉지..?
어..? 같은 종이봉지네? 해시 포테이토 바이 튼가?
생각하던 찰나 두 남자 중 유독 눈썹이 짙은 남자가 그 봉지 안에 손을 넣어 꺼낸 건 해시 바이트가 아니라… 러셋감자를 제멋대로 자른듯한 프렌치프라이였다. 순간 오후 2시를 향해 가는 나는 불안해졌다.
혹시… 우리만 먹고 끝난 걸까? 재고가 떨어진 걸까? 아… 저분들도 이 맛을 봐야 하는데.
라고 말이다.
선택일까, 운명일까.
곧 마흔을 앞둔 나는, 산타 이야기가 3장에 들어오면서 이상하게 옆길로 새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묘하게 이런 이야기가 더 유명해질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왜냐면 나는 늘 이런 순간을 겪어왔으니까. 텅 비어 있던 식당에 들어가 앉아 밥 한 숟가락 맛있게 당장 허기를 달래고 주위를 둘러보면 식당이 어느새 만석이 되어 있다든가, 내가 고른 과일은 왠지 대부분 당도가 높은 거 같다는 재주. 누구에게 전수받지 않은 나만의 재주라는 게 있다.
그래. 재주라는 게 있다.
원숭이가 재주를 넘는다는 말도 들었고, 천재는 없다는 말도 들어봤다. 그렇다면 운명, 선택, 재주, 천재 — 이 사이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금 내가 끌고 가는 이 이야기에도 운명이 있고, 선택이 있다. 운명처럼 믿고 따라가게 되는 길이 있고, 그 길 위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만의 재주도 있다. 또 가끔은 나 스스로를 천재라고 느끼며 잠깐 자뻑하기도 한다. 그러다 들통난 실력에 금방 넘어지면, 불길한 운명이 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 나는 또 선택하겠지. 숨 쉴 구멍을 찾는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