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주머니
요즘은 자기 어필이 최고다. 숨겨둔 드래곤볼 몇 개를 꺼내 들고, 그걸 타이틀 삼아 “이게 나야”라고 보여줘야만 존재가 또렷해지는 시대 같아 이젠 내 재주 때문에 살고 있는지 내 운명 때문에 그 길 위에 서 있다가 넘어져도 스스로 천재 아냐? 어떻게 이렇게 잘 넘어졌지? 라며 망각할 때가 있다. 대학 생활을, 고등학생 때 죽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직장생활을, 가끔 뒤에서 눈물 흘리는 날들이 있다는 것처럼. 결혼 생활은, 연애 시절 때처럼 ‘공주님’이라 평생 불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가 되고 나니, 그 선택은 곧바로 결과가 되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걸 느낀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안다고 함부로 말 못 하듯, 겪어보지 못한 부분에서 “대충 알 거 같은데?”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너무 어둡게만 들릴 수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행복도 존재한다. 그 행복이 우리를 또 다음 날로 밀어주는 에너지가 된다. 결혼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제 결혼 후 이야기도 해야겠지.
결혼 후 자식이 유무인 것은 운명일 때도 있고, 선택일 때도 있지만 나는 ‘운명 같은 선택’으로 부모가 되어보니, 내가 늘어 논 모든 조언들은 결국은 부모의 선택과 운명으로 만들어진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엄마가 뭘 알아 아빠가 뭘 알아 대들다 그 배경과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가다, 뒤통수 맞는 순간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또 그 와중에 나만의 살길과 위로를 만들고, 기쁨을 주머니에 넣어가며 오늘을 버티는 듯한다. 그리고…이 책의 제목처럼 산타의 일기가 결국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다고 느낀다. 산타는 행복, 기쁨, 선물, 기대, 착한 일·나쁜 일… 하지만 결국 ‘착한 일’을 다시 믿게 하는 존재. 우리 아이들의 기대감, 서프라이즈, 벅찬 설렘,
그리고 그 모습을 반복해서 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마음까지.
1월 어느 날
새벽이다.
할 일이 없는 날은 오히려 잠이 더 오지 않는 것 같다.
산타복도 산타 할머니의 요술 같은 손을 거쳐 말끔히 꿰매졌고,
연말 모임도 무사히 끝났다. 루돌프에게도 11개월 휴가를 주고 나니,
올해 내가 할 일은 다 마친 것 같아 마음에 빚진 게 없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아주 맛있고 유명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기에 아침부터 할머니와 난 서둘러 나섰다. 파란 지붕에 필기체로 쓰인 흰 간판. 멀리서도 “아, 저기구나” 하고 알아볼 만큼 눈에 띄는 카페였다. 내 팔을 끌고 가는 할머니는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다. 사실, 오랜만에 나들이니까. 카페에 들어서자 커피 향이 코끝을 감싼다. 내 수염과 머리카락 사이사이까지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진득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 공간에 나와 할머니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나를 더 젊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내 속마음. 흰머리가 난 뒤로 이런 곳에 자꾸 스며들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매번 그런 걸 보니- 으쓱 거리며 우리는 유명한 해쉬바이트와 커피 두 잔을 시켜 구석자리에 앉아 또 한 해를 잘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나는 마음속으로 모두를 안아주고 싶었졌다. 이런 게 산타 오지랖인가..
“어머어머 이거예요 해쉬바이트! 드디어 먹어보네!! 여보!”
흥분한 산타할머니의 톤을 난 맞춰 주었다.
“아!! 이거군요!! 유명한 해시 바이트?!!”
옆 테이블에는 젊은 부부가 앉아 눈빛으로 사랑과 맛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안아주고 싶었다.
왜일까..?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커플 여자분과 눈인사 나눴고 그녀도 나에게 미소로 답했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