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메리 크리스마스야, 톰.

by 밴쿠버이작가

Im hungry

배가 고프다


저녁에 라면을 먹기로 했는데, 단백질 없는 저녁이 과연 괜찮을지 잠깐 고민이 된다. 내 나이 한참 단백질 챙길 마흔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인스턴트가 당기는데 딱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자극받고 싶어서다. 부스럭. 부욱. 딸깍. 부글부글.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받은 자극으로 또 써내려 가 보려고 한다.


산타.


나는 지금 산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진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뻔한 판타지도 싫다. 그저 “옛날 옛날에…”라고 시작해도 믿길 바라는, 머릿속에 풍경처럼 그려지는 이야기였으면 한다.




어디까지 했더라?




산타의 일기


아, 산타가 태어났다. 그것도 대단한 산타가(家)에. 이 아이는 앞으로 방학마다 다른 7 대륙의 산타들과 합숙하며 리더십을 배우고, 친구의 우애,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관리법,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꿈나라 요정들의 역할까지 배울 것이다.. 여기엔 반전이 있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산타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사실 산타 요정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어른들의 동심을 붙잡느라 정신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애보다 어른이 문제다.

어른들이 나이 먹으며 변질되는 그 마음숲— 세금, 일, 시부모, 아이들 학교, 장보기, 갑작스러운 가족행사, 내 건강, 치과 체크업, 친구 약속, 좌절, 술, 다툼… 그 안에 겨우 숨구멍처럼 남아 있는 웃음. 솔직히 말하면,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착한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거의 신경 쓰지 못한다.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 여부는 ‘내 잔고의 상황’에 따라 다르니깐. 물론 그마저도 고민하지 않는 부를 가진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 복잡한 마음숲을 헤집고 지나, 부모에게 다시 ‘아이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일— 그게 바로 산타 요정들의 가장 큰 일이다. 어른들이 빡빡한지 요정들이 빡빡한지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스킵.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신빼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듯이 산타가의 대대장산타인 나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산타 요정들 없이 이 수억만 명의 아이들에게 기쁨의 25일을 전달할 수 없을 테니까.


나도 역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고,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좋을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었다. 그 사이 산타 요정들은 올해를 위해, 언제나 다음 해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일곱 대륙의 산타들도 각자 자기가 태어난 땅의 방식대로 어떤 산타는 더 아시아적으로, 어떤 산타는 더 힙하게 각자의 하루를 보낸다. 우리 대산타에게 하늘이 준 선물은 딱 하나다. 모든 언어가 능통하다는 것. 이 말로 해도 저 말로 들리고, 저 말로 해도 이 말로 들리는 능력. 전 세계 아이들의 소원을 받아들일 준비 과정을 위해 생긴 축복이다.


연말, 대대산타와 7 대륙 산타들의 어마어마한 파티가 끝나면 1월은 대대적인 휴가의 달이다. 모두의 대단한 노동 후 누구든 충전이 필요한 법. 휴가라 하면 산타복을 내던지고, 보기만 해도 허리가 뻐근한 큰 산타 주머니를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리고 내 침대에서 산타 할머니와 밀렸던 책 영화 보기.. 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앞으로 더 나아질 나”를 생각하는 미래지향적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목표는 5킬로만 감량해 보는 건데, 매년 쉽게 줄어들지가 않는다. 흠. 나에게 1월은 의외로 Take it easy, man 단계다.


내가 다녀간 집들,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아이들, 부모의 흐뭇한 얼굴, 무한 용서와 무한 기쁨으로 쫓기듯 지나간 12월의 끝.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나 역시 힘을 얻는다. 새해의 소원과 다짐이 쏟아지는 세상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다 보면, 그 긍정의 힘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이 된다. 대대산타인 나에게는 나만의 특별한 라디오가 있다. 울음, 감정, 소원, 혼잣말, 저주, 그리고 눈빛으로만 하는 대화까지— 전부 다 들리는 주파수. 인간들이 알면 입 틀어막을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두리뭉실하고, 그래서 더 진짜 같은 이야기들. 이렇게 일기까지 들키게 된 이상 하가지 정도는 공유하여 해야 또 술술 읽히지 않을까 싶어 살짝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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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커플.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는 기대되지 않는 밤이었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선물 받은 기억은 있는지, 산타를 믿은 적은 있는지,
내가 기뻐한 적이 있었는지.

어떤 작가의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작가는 특이하게 결말을 맨 앞에 두고 말했다. 우리에겐 백과사전의 100배의 메모리따윈 없다고. 모든 기억력은 내가 만든 조작 같다고 말이다.

어쨌든 계속 이어 이야기 하자면, 난 바라는 건 늘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들 하는 만큼만 살고 싶다’고 했지만 그 ‘남들’이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희망도 없고,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숨 쉬고 사는지,
다들 나처럼 이렇게 나락 속에서 사는지 궁금할 정도다.

거리의 홈리스를 보면 생각했다.
저들도 누군가의 기쁨으로 태어났을 텐데,

그들도 세상 맑은 눈깔을 갖고 태어나, 어미의 젖을 먹을 때 따듯한 온기를 기억할 텐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말이다.

사람의 ‘선택’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들은, 그리고 나는
자꾸 이런 각자의 푯대 앞에 시련만 마주하게 되는 걸까.

그런 내가—

눈이 떠져 그냥 오늘을 살고, 죽기 직전까지 버티던 내가—
그녀를 만났다.
세상을 흐릿한 눈으로 걸어 다니던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빛’이라는 게 아직 존재한다고 알려준 사람.
그녀와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기억을 내가 억지로 지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야,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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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었다. 대대산타의 라디오에 그 말이 흘러들어왔다. 모래알 몇 알이 굴러들어 오듯, 그의 귀에 스며든 단어. 산타도 덩달아 왼쪽 가슴, 수북한 털 사이로 개미 한 마리가 걸어 다니는 것 같은 간지러움 느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그 순간의 간지러움은 평생 같나 보다. 나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의 간지러움을 먹고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너무너무 간지러운 이야기가 들리면 산타 할머니를 불러 라디오 앞에 새워 두 손을 꼭 잡고 “이거 한번 들어보슈~” 하며 리플레이를 눌러 그녀의 눈에서도 구슬 같은 빛이 넘쳐흐른다. 첫 기억. 첫사랑. 첫 행복. 톰의 희망이 작아지지 않길 바란다. 톰에게도 산타요정들이 찾아갈 일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