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
문방구점 아주머니는 눈치조차 못 챈 것 같다. 나는 처음으로 가진 돈으로는 감히 살 수 없을 만큼 비싸 보이는 우유빛깔 샤프란걸 물건을 훔쳐보았다. 잦은 출장 때문에 온갖 외국 문구들이 있었던 나의 친구집, 어린 나이에 그보다 부러운 것도 없었다. 나도 ‘좋은 샤프’를 가지고 싶었던 걸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 샤프를 주머니에 넣었다. 손에 땀이 흥건해 물주머니라도 터진 듯 축축한 손으로 집에 돌아왔고,
너 뭐 훔쳤찌!
라고 물어볼 것 같은 어른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날 엄마가 대뜸 묻는다. 분홍샤프가 어디서 났냐고. 샀다고 말했다. 마음에 뜨끔거림이 남아서 원래 가격보다 훨씬 낮게 말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비싸다고 생각한 엄마는 “어디서 그런 큰돈을 막 쓰니”라며 호되게 혼내셨다.
그때 알았다. 거짓은 거짓을 덮을 수 없다는 걸.
아이 때의 심장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나쁜 기억보다 슬픈 기억을 더 깊이 기억하는 거 같다. 그 사이에 ‘좋고 싫음’, ‘최애와 최악’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산타를 믿지 않았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반대로 호화롭지도 않은 집의 외동딸이었다. 워커홀릭 아빠, 시어머니를 모시던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자란 나. 이렇게 쓰니 참 단순한 문장인데, 그 속에 모든 공기가 담겨 있었다. 산타의 착하게 하면 선물을 준다는 협박(?)보다도, “아빠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라는 말이 더 큰 공포감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으로도 충분히 착하게 살 수 있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해외에서 살고 아이를 낳으면서 점차 가까워졌지만, 10대와 20대의 부모 기억은 거의 없다. 친구들이
(씩씩) 나 어제 엄마랑 싸웠다!
고 하면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감히 엄마와 싸우지? 생각해 보니 엄마도 충분히 기억될 만큼 날 단속 하셨었나 보다. 쭉 조기유학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졸업 후 24-25살쯤 한국에서 다시 잠시 가족이랑 살 때 이야기다. 어느 날은 내가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가
가족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해! 어디!#!$^@%#$@
는 혼줄을 제대로 맞고 나서는, 나는 더 짜증을 잘 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내 감정은 늘 내 안에서 믹서에 갈려, 알아서 낮아지도록 배웠으니까. 그래서
착하면 선물을 준다! 세상은 착하게 살아야 해!
는 기적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고 자랐다. 착하면 그냥 착한 거다. 그러나 1.5세대를 지나 해외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그 신비함과 현실 사이 어딘가를 헤매며 아이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고 있었다. 딱히 너희들은 나랑 다르게 살아야 해! 란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부리는 연기력도 아니고 그냥. 그냥 영어로 just for fun이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문득, 산타 요정은 정말 있다고 느낀다. 나는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진짜 들어봐야 한다. 밤에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 하루 종일 화낸 게 너무 미안하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미안해, 엄마가 내일은 안 그럴게
라고 되새기며 눈물 흘리는 그런 광대 같은 미친 여자는 나밖에 없다고 생가가 했다. 그럴 때면 산타 요정은 분명 아이 침대 헤드보드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잠자고 있는 아이들 앞에 엄마들을 유인해 무릎 꿇게 하고, 우리의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 색색별 매직가루를 뿌려, 흑백 같던 관계를 다시 흐르게 만들고, 내 마음을 끌어안아주는 존재. 내리사랑. 산타, 산타 할머니, 산타 요정, 루돌프들은 그런 관계일 것이다. 세상의 속 깊이 들어가 부딪히며 살며, 사람들의 행복과 슬픔 사이에 함께 인볼브 되는 존재.
산타의 일기
난 2월의 아침이면 집 앞 눈을 쓸며 시작했다. 옆집 메이시집에 룻도 오늘은 특별히 더 일찍 나와 눈을 쓸고 있다, 룻씨는 나의 직업은 모른다. 그냥 학교던 쇼핑몰이던 산타 알바를 많이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나: 허허허 룻씨, 오늘은 출근 전에 나와서 눈을 쓰시나 봐요?
룻: 굿모닝입니다!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지 모예요! 아니 지붕 위에 쥐들이 잔뜩 들어왔는지 계속 긁어대는 바람에 밤을 꼴딱 새웠어요!
나: 아이쿠 저런,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룻: 아 모르겠어요. 저희 집은 쥐만은 안 나온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원. 맘음대로 되는 것들이 없는 밤이었어요
나: 제가 도와드릴 게 있으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세요!
룻: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난 우리. 그런데 너무 한다. 산타역할 알바를 하는 산타라고 알고 있으니. 사실 나는 다른 모습으로 인간들 주위에 맴돌고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슬림한 모습의 바리스타가 되어 동네 카페에서 라테를 내려주고 있다던 지, 새벽에 빵집에서 반죽을 밀고 있다던지, 늦은 저녁에 동네를 사찰하는 경찰이 되어 거리를 지키고 있다던지, 한여름 해변가에서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아저씨라 던지, 2월엔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하는 직장인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밤 비행기를 타는 젊은 남자일 수도 있다.
올핸 2월의 여름. 호주로 날아가고 있다고. 작년에 서핑을 약속한 친구들 보러, 푹푹 찌는 36도짜리 시드니나 멜버른, 혹은 더 더운 동쪽 어디쯤으로. 올해 2월엔 Jervis Bay에 들러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할 예정이다. 대대장 산타인 나는 다른 대륙 산타들도 초대했지만, 가족 일정과 개인 일정을 빼고 참석하는 건 늘 3명 정도다. 나를 진정 직장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무서우면 올 텐데 말이다.. 오세아니아 산타는 자기 동네이니 제외해야 할까 싶다. 그에게 거절은 없다.
하얀 백사장에서 몸을 지지고, 돌고래를 보며 의례적인 관광도 실컷 하고. 큰 나무와 나무 사이의 식당에 앉아 얼음이 넘치도록 담긴 콜라 한 잔과 바삭한 오지칩스를 먹을 것이다. 크리스피 베이컨, 모짜·체다 치즈가 완벽히 어울린, 파가 송송 뿌려진 그 감자칩. 버거 하나, 사이드 스시롤 하나. 포만감이 행복으로 차오르는 식사. 그리고 오후엔 산타 할머니와 데이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플랭크톤이 빛나는 밤바다에서, 연애 때처럼 깍지를 끼고, 바다 끝으로 나가 맨발로 물결을 헤치며 까르르 웃는 산타 할머니를 보며 — 그걸로 2월은 가득 찼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월에 가장 열심히 일한 산타 할머니가 가장 기다리는 달, 바로 2월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