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산타의 일기
재미없는 이야기도 세상 누구보다 밝게 들어주고, 내 슬픈 이야기는 그 호수 같은 눈망울 안에 담아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품어주는 사람. 그래서 3월은 언제나 그녀의 달이다.
우리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진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나로선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살아오던 그녀에게 ‘산타할머니’라는 타이틀은 가끔 버거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힘드세요?
그만하고 싶으세요?
같은 말은 왠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달아날 것 같아 나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가택 한 방법은 하나다. 3월 한 달은 온전히 그녀에게 맞추기. 늘 그녀의 계획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내 반응이 그녀의 선택을 흔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녀의 순수한 설렘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녀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 순간을. 주방 끝에서 콧노래가 들릴 때, 전화벨이 울려 그녀가 신난 목소리로 전화받으며 방으로 들어갈 때, 밤늦게 여행지 검색 하다 나와
너무 기대돼요!
하고 눈웃음칠 때. 그 모든 순간이 그녀의 엔진이 켜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의 마음에 행복을 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고갈되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결국,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원동력이라는 걸 그녀를 보며 깨달았다.
2월 마지막 날부터 그녀는 이미 신이 나 있었다. 아침부터 나에게 한 상 가득 차려주고, 내가 좋아하는 원두로 향 짙은 커피 한 잔 내려주고, 평소엔 몸무게 관리 때문에 잘 주지 않던 베이컨 체더 소시지까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칭찬해 그녀를 더 기쁘게 해 주기로 한다. 거기에 캐나다산 메이플 시럽 듬뿍 올린 팬케이크 위에 저염버터 한 큐브까지. 잠깐 울컥했지만, 꾹 참았다. 얼마나 신나면 이렇게 나를 위해줄까.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잖아. 주방에서 스윙을 추며 아침상을 차리는 그녀를 보니 참, 웃음이 나왔다.
우리 내일 어디 가는 것 같아요?
글쎄요, 당신이 또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하고 있다고요.
홍홍홍, 작년 그 악어 새 체험은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사실 저도 놀라서… 쪼금 오줌 싼 느낌이었어요.
아하, 그랬죠. 아휴, 그건 정말 아찔했어. 악어 새 체험이라니! 대대장 산타 인생 마지막 순간인 줄 알았다고요. 허허.
자기도 그랬군요? 늘 용감하게 앞장서길래 난 몰랐죠오~ 홍홍홍, 베이컨 더 드릴래요?
응, 그럼 좋지. 베이컨은 늘 세 개론 모자라. 그대도 어서 와서 좀 앉아요
그럼요, 당장 앉아야죠. 이번 커피콩은 신맛이 가득해서 너무 기대된다니까요.
그렇게 난 베이컨 3개를 더 얻으며 3월 1일이 기대된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