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그런 때.
그럴 때면 난 이 책을 꺼낸다. <삶의 모든 색>.
흔히 인생을 처음 걸어보는 '길'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정말 적합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다다를 곳은 있지만, 누가 대신 가본 적도 없고 대신 걸어 줄수도 없기에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길. 그래서 중간중간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길. 한 사람의 인생은 정말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삶의 모든 색>은 노르웨이 작가이자 삽화가인 리사 아이사토의 그림에세이이다.
인간의 유년기부터 노년까지의 인생을 6가지 '삶'(아이의 삶, 소년의 삶. 자기의 삶, 부모의 삶, 어른의 삶, 기나긴 삶)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각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짧은 에세이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 이 책을 꺼낸다. 때로는 내가 걸어온 길에 눈이 멈추고, 때로는 내가 서 있을 법한 길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감정들을 찾아본다. 나를 객관화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 책을 샀던 2년 전에는, '소년의 삶'에서 많은 시선을 멈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정작 많이 없었지만, 용기와 희망만은 가득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했어요"
"당신이 당신의 날개로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최근 발견한 게 있다. 반복되고 있는 표현 하나. 이전에는 책장을 쓱쓱 넘기고, 내 마음에 꽂힌 그림 몇 곳에만 집중하느라 놓쳤던 부분이다. 아마도 이제야 작가의 메시지를 발견한 듯하다.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여느 때와 같이 길을 잃은 답답한 느낌에 나침반이라도 찾아볼까 싶어 책을 펼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둘째치고 내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지만이라도 알아보자 싶어서...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작가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랑'... 그 표현을 발견했을 때 정말 예상치 못한 위안을 받았다.
'아차' 싶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존재구나, 사랑받았던 존재였구나'를 깨달으면서 나침반 보다 더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은 잘 모르겠지만, 그 길에 마냥 나 혼자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뒷따르면서 '나 혼자'로 좁혀있던 인식이 주변으로 넓혀졌다.
그제야 남편도 생각나고, 사랑스러운 딸도 생각나고, 언니도 생각이 나고, 나를 존귀하게 여겨주는 소중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면서, 때때로 방향을 잃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너무 앞만 보고 걷고 달리고, 지치고 하다 보니, 내 옆에 동행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길을 찾으러 왔다. 그리고 소중한 나의 책 한 권에서 나의 소중한 이들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