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7 일 년 만에 다시 온 일본
일본 오사카에서 4박 5일 동안 지낸 이야기다. 서른다섯의 엄마, 아빠와 아홉 살 아이가 함께하는 두 번째 일본 여행을 기록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꽤나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다. 지난 2월 말, 남편은 닌텐도 게임 ‘젤다의 전설’을 시작한 아들이 게임과 스토리, 캐릭터에 푹 빠져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에게 저렇게 좋아하는데 오사카 한 번 가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동의해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다. 아이와 일본 여행은 작년 여름 오키나와 여행을 하고 이번에 두 번째였기에 수월하게 다가왔다.
<항공권>
제주 -> 오사카(간사이공항) 10월 7일 월요일 오후 4시 15분 출발
오사카(간사이공항) -> 제주 10월 11일 금요일 오후 1시 출발
<호텔> 4박 5일
호텔 뉴 한큐 오사카 3인 베드 (조식 포함)
내가 아이 젖먹이 때부터 제일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하고 아이와의 여행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다. 항상 호텔의 조식을 신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번 오키나와에서 매일 아침밥과 된장국을 찾는 아이였기에 망설임 없이 조식을 신청했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여행까지 왔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는 양이 줄면 짜증도 늘고 병이 나기 때문에 늘 여행에서 먹는 것이 일 순위다. 일본은 그런 점에서 입맛이 친근하기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밥을 잘 먹어서 데리고 다닐 맛이 난다.
오후 늦은 비행기였지만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지난주에 여러 가지 일들이 몰려서 너무도 바쁜 한 주를 지냈다. 그래서 짐을 출발 당일 아침에 싸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5일 동안 집을 비우니 빨래며 청소, 쓰레기 등 정리도 필수였다. 그리고 우리 집 반려견 하봄이를 애견 호텔에 맡기고 가야 했기에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내가 짐을 싸는 동안 남편이 집안을 정리해 주었고 쓰레기도 버려주고 문단속도 꼼꼼하게 해 주어 준비가 금방 끝이 났다. 하봄이를 애견호텔에 맡기고 공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체크인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작년 오키나와 갈 때 인천공항에 갔을 때보다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아이가 덜 지루해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지난번 일본 여행에서 쓰지 않고 챙겨놓은 유심을 뜯은 남편은 포장이 뜯긴 흔적도 없는데 유심칩이 없어 당황했다. 여행이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서 그 관계의 깊이와 농도가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당해하는 남편에게 공항 가서 사자고 했고 미리 뜯어볼걸 그랬다며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확인도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오히려 남편이 더 미안해하며 유심 문제는 일단락 됐다. 그렇게 짐을 찾고 유심을 사고 배고프다는 이니를 데리고 로손 편의점으로 갔다. 일본은 편의점 음식도 퀄리티가 한국과 비교할 수가 없다. 편의점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한국에서는 아이가 편의점에 가는 것이 마음이 썩 좋진 않다. 일본에서는 삼각김밥을 골라도 퀄리티가 좋기 때문에 먹거리에 신경 쓰는 엄마로서 마음이 가볍다. 사고 난 음식들을 다 먹고 나니 오후 7시 25분.
호텔로 가는 하루카 열차를 타러 갔다. 이미 제주에서 남편이 하루카 열차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하루카를 발권만 하면 됐다. 바로 다음에 오는 오후 7시 46분 열차를 타고 오사카역에서 내렸다. 약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는데 가는 내내 오사카 야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는 일본에 오면 아빠 생각이 난다. 지난번 오키나와에서도 그랬다. 만 네 살,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희미한 기억 속 우리 집에는 플레이 스테이션(게임기)도 있었고 일한사전과 한일사전이 있었다. 제도샤프, 야마하 전자피아노, 도란스라고 하는 변압기도, 소니카메라도 있었다. 아빠가 일본 출장에서 사 온 엄마의 양산은 아직도 있다. 삼십 년도 넘은 양산은 고장 나지도 않았고 촌스럽지도 않다. 어쩌면 아빠의 흔적들을 더듬어 볼 수 있어서 일본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역에서 내렸다. 도보 5분 거리에 호텔이 있다. 번화가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신이 났다. 아 퀴퀴한 도시냄새. 걸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매일 밤 깜깜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자다가 조명으로 환하고 사람들이 많은 도시 한가운데서 잔다니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아까 이니도 그러더라.”
(역시 내 아들. 그랬구나.)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남편은 열심히 속성으로 습득한 일본어를 써볼 기세로 일본말을 구사했다.
"곤니찌와."
돌아온 건 모국어였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다행히 한국인 직원분이 계셔서 수월하게 체크인을 했다. 프런트 뒤쪽에 보면 가져갈 수 있는 어메니티들이 있다. 칫솔과 면도기, 각종 차가 있다. 오기 전에 호텔이 비치하고 있는 용품들을 미리 알아보다가 알게 되어 칫솔과 샴푸, 린스, 바디워시를 챙기지 않을 수 있었다. 짐의 부피와 무게는 여행의 질과 반비례 관계이기에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7층에 배정받은 우리 방. 4박 5일 동안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곳이다. 창문으로 보이는 환한 불빛과 브리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와, 드디어 도시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일상이었던 환한 밤의 거리 속 인파였는데 일 년 가까이 시골에 살다 보니 야경과 인파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가 점점 크다 보니 베드가 세 개가 필요했다. 수면의 질은 여행의 질과 비례관계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오키나와에서 지냈던 마하이나 호텔과는 정반대로 도심에 있는 호텔이기에 좁았고 화장실과 욕조도 작았다. 하지만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정말 딱 필요한 정도의 공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생각과 함께 참 군더더기 없는 생활양식이 일본 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짐을 넣고 호텔 앞 요도바시 카메라(쇼핑몰)에 갔다. 건프라에 푹 빠져있는 아이 덕에 장난감층만 쇼핑을 했다. 오느라 힘들었던 몸이었지만 건담을 너무도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이기에 같이 구경했다. 이제는 뭐가 있고 없고를 따져가며 제법 마니아 아우라가 나는 우리 아들의 모습을 보니 여행 오길 참 잘했지 싶었다. 좋아하는 게 확실하고 설명하는 걸 들어보면 제법 깊이가 있어서 가끔 놀라곤 한다.
한참을 둘러보더니 역시 건프라를 사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교토에 있는 건프라샵이 더 크다고 들었기에 내일 그쪽에 가서 사기로 하고 지하에 있는 푸드코트가 있는 마트로 향했다. 식당 가서 먹기 싫다는 아이의 말에 존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나온 지 아홉 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으니 아이도 아이만큼 최선을 다했으리라. 우리는 푸드코트에서 산 도시락과 맥주, 간식거리 등을 가져와 숙소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가야 했기에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밤 10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오사카에서의 첫날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안녕, 오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