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글방 1 상황묘사: 이별
금요일 저녁 8시 35분. 전화기가 울렸다.
“원희야, 할머니 돌아가셨어. 여기는 오빠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준비해서 올라와."
제주에 사는 그녀는 할머니 부고 소식을 듣고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항공권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항공권이 매진되어 텅 빈 화면만 반복될 뿐이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그녀는 노트북 앞에서 분개했다. 남편은 흐느끼며 우는 그녀를 안았다.
“에고. 이럴 때는 진짜 제주가 섬이라는 게 확 와닿는다. 비행기밖에 없으니."
잠들기 전까지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어 여수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아침 비행기였기에 그녀와 가족들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녀는 취소 표를 발견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무사히 예약을 마쳤다.
“여보, 청주행 8시 35분 출발 예약했어.“
“가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마치 자기 일처럼 움직여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차에 올라타는 아이의 모습에 그녀는 아이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이별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처절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그녀는 창밖으로 깜깜한 하늘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그녀는 할머니를 기둥 삼아 살아왔다. 삼십 년 넘게 할머니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끝없이 차올랐다. 그렇게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옆에서 보던 아이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울지마. 할머니가 우리 빨리 오라고 취소 표 생기게 해주셨나 봐. 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으신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우리 잘 다녀오자. 응?”
그녀는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고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사실 그녀는 이틀 전, 당일치기로 할머니를 만나고 왔다. 그때 만난 할머니는 너무도 작았다. 환자 침대가 그렇게 넓어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지난 6월에도 할머니를 보고 왔는데 그때보다 더 야윈 모습을 마주하자마자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정해버리면 민들레 씨앗이 날아가듯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할머니, 나 키워줘서 고마워. 맨날 울어서 미안해.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해. 할머니 사랑해. 나 다시 태어나도 꼭 할머니 외손녀 할 거야.”
그녀는 연신 할머니의 부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할머니는 누워서 엉덩이를 들어가며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대답했다.
“알았어. 엄마 말 잘 들어.”
그렇게 알겠다던 이틀 전 할머니는 이제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래도 그녀는 짧게나마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헛헛함만이 커질 뿐이었다. 헛헛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준비된 이별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