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글 Nov 23. 2021

가면을 쓴 사람

부끄러운 자화상

가면을 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가면은 쓰는 사람에게 잘 들어맞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가면이 그 사람인지 그 사람이 가면인지 모를 만큼 가면과 그 사람은 하나로 보입니다.

그 사람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 가면을 써 왔습니다. 언제나 그 가면과 함께였습니다.

잘 때도,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친구들과 함께할 때도 말입니다.

그 가면은 그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두꺼워져 갔습니다.




가면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얼굴을 밑그림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면은 아주 알록달록하고 반짝거리는 여러 가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얗고 반짝거리는 조각은 어릴 때부터 줄곧 좋아해서 늘 가면의 한 부분을 차지하도록 했던 '착한 척 조각'입니다. 아마 가면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착한 척 조각은 크면 클수록 그 조각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의 종류와 모양이 다양해졌습니다. '친절 조각', '정의 조각', '관용 조각', '온유 조각' 등등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부분은 노랗고 반짝거리는 '똑똑한 척 조각'입니다. 그 조각은 그 사람이 키가 크고 자라면서 한해 한해 정성스럽게 하나씩 모은 '지식 구슬'로 촘촘히 만든 조각입니다. 그 지식 구슬도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구슬들이 모여 있습니다. '언어 구슬', '사회적 관계 구슬', '문화 구슬', '종교 구슬', '예술 구슬'등등입니다.






그 사람은 하얗고 반짝거리는 착한 척 조각'으로 자신의 착한 모습에 취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조각보다 작은 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가면을 쓴 채, 한껏 조롱과 비난의 마음을 품고 비웃었습니다. 그는 또한 노랗고 반짝거리는 부분이 적은 사람들에게 한껏 자신의 '노랗고 반짝거리는 조각'을 뽐내며 자기보다 노란 부분이 적어 보이면 한껏 으스대며 종류별로 다른 구슬들로 꿰매진 조각을 보여 주었고 그럴 때에야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면은 그 사람이 숨 쉬기 힘들게 만들곤 했습니다. 특히나 한여름의 폭염이 찾아올 때 그 사람은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도저히 숨을 쉬기가 힘들어 가면을 벗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가면을 벗을 때 그 사람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가면 위로 드러난, 폭염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괴물 같은 모습이었거든요. 가면을 벗으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여름이 너무 미웠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진  얼굴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선명해져 갔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면 뒤에 가려진 자신의 얼굴이 참을  없을 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면보다 마음속에 새겨진 얼굴을  많이 닮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시기와 질투로 얼룩져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진짜 얼굴인지 가면인지는  사람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가면을 벗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점점 더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점점 더 그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점점 더 무거워지고 숨쉬기 버겁게 만들었거든요.

유독 여름이 길었던 한 해의 폭염이 쏟아지는 어느 날, 그 사람은 가면을 쓰고 참아볼까 고민했지만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가면을 벗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흩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을 간신히 찾아 고통 속에서 서럽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그려진 얼굴마저 지우고 싶었지만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그 사람을 참담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퉁불퉁한 감자처럼 눈도 입술도 부어 있던 그 사람에게 누군가가 인기척을 했습니다. 어둡고 깜깜한 곳이라 아무도 없다고 믿고 숨어서 울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낯설지 않은 이였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얼굴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바람은 금세 그 사람의 불쾌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식혀 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는 이상하게 많은 말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금세 그 사람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바람을 주는 그가 폭염을 그치지 않게 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왜 나에게 바람을 줄줄 알면서 폭염을 그치지 않게 하는 거예요?! 날 치욕스럽게 만들고 싶으세요? 당신이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다고요!! 당신은 무자비하고 내게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아무 말도 없던 그가 가면을 벗은 사람에게 온화하지만 아주 위엄 있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면을 벗지 않으면 너는 너의 진짜 얼굴을 모르겠지. 네가 내 얼굴과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면

너는 나를 닮아갈 수 없어. 네가 사랑하는 게 가면이니 내 얼굴이니?"


"....."


그 순간 그 사람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음속 그 얼굴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가면을 사랑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과 회한의 눈물이 눈동자를 가득 메웠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그 얼굴을 닮아 가는지 확인하며 진짜 얼굴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생 가면을 버릴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더 나아져 가는 모습에 기뻐하기도, 또 때로는 여전히 흉측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아연실색하며 눈물의 나날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은 가면을 벗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오늘도 그 사람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고 싶은 마음으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자신이 한껏 그 가면으로 으스대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면목없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흉측한 얼굴에 놀란 사람들을 볼 낯이 없는 소심해진 마음으로. 그러나 그는 압니다. 그의 마음에 메인 끊어지지 않는 사슬이 그 얼굴에 가까이 가게 한다는 사실을요.      






  

 

작가의 이전글 부부의 세계 "너도 진심을 말해줄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