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대 괴물

심연을 들여다볼 때다

by 찾다가 죽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응시할 것이다.” 니체의 ‘선악의 피안에서 (1886)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니체는 어둡거나 파괴적인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지배적인 힘에 맞서 싸울 때, 그것에 사로잡혀 타락하지 않도록 신중할 것을 권유한다. (토니 카샤니의 논문 말미 글을 재인용한다)


처음에는 전혀 말도 될 것 같지 않은 다툼이 싸움으로 번지더니 이제는 오히려 주객전도를 넘어 적반하장의 형국이다. 한 켠에서는 정의의 승리요 다른 한 켠에서는 정의의 실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자주 하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나는 옳은가?’하는 자기 점검이었다.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할 때면 되새기고 하던 물음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샌가 ‘나는 정상인가?’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으로 바뀐 자신을 발견한다. 왜? 내 보기엔 옳고 그름을 떠나 정상, 비정상이 가늠하기 힘든 지경을 자주 대면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생겨 난 신조어들 가운데 ‘뉴 노멀’이 있다. 애초에 낯설기 그지없던 이 단어가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은 그만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일까?


왜 그럴까?

어째서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이 뒤죽박죽인 세상으로 변하는 걸까?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던 시절, 한 밤중에 비상이 걸린다. 자다가 일어나 소등한 상태에서 탄띠와 철모는 물론 방독면과 집총을 한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몇 분, 그런 아비규환이 없다. 지금이 그럴 때란 말인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이 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간간이 들려오던 유럽 국가들의 일부 국수주의자들에 의한 외국 관광객 폭행 사건들이 영국의 브릭스 이후 더더욱 확산된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재선 되고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의회 난동 폭력자들에 대한 사면 조치다. 시진핑도, 옐친도 모두 자국의 이익 외에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도 행여 유행(?)에 뒤질까 봐 이러한 시류에 합류하려는 걸까?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 셨으며..” 시편 103편에 나오는 성경 구절이다. 동서가 서로 멀듯이 남북 또한 양 극단이다. 좌우나 상하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글러야 하고 한쪽이 정상이면 다른 한쪽은 비정상임에 틀림없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자기가 옳단 다. 니체가 경고했듯이 어느 한쪽이 괴물이라면 다른 한쪽은 어느새 그들을 닮아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심연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오래도록,

얼마나 오래?

심연이 나를 응시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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