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영어 약자 BB로 불리는 베이비 부머(1955년~1963년 사이에 태어난 780만)들은 모두가 삐삐 세대에 속한다. 페이져나 비퍼와 같은 공식 명칭보다는 호출 시 나는 소리 때문에 붙여진 삐삐라는 이름의 무선 호출기를 말한다. 1983년 서비스를 시작해서 1997년 기준으로 가입자가 2천만 명을 넘었으니 전 인구의 절반이 사용한 셈이다. 그 10년쯤 뒤인 1994년부터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PC 통신 서비스가 시작된다.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지금은 모두가 사라진 기술들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베이비 부머들로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왜?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기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3차원의 제약을 벗어나는 초감각 전환 시기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베이비 부머들이 힘겨운 이유는 유사 이래 유전돼 온 조상들의 아날로그적 경험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디지털적 식으로 탈바꿈하는 두 세상을 동시에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원치 않는 이민을 온 셈이다. 아니 3차원 세상에서 시공을 초월한 4차원으로의 이동이니 이민 그 이상이다.
순탄했던 인생 전반전의 아날로그적 교육이 후반전의 혼란스러운 디지털적 경험으로 뒤범벅이 된 채 힘들게 이민 생활을 버텨왔는 데 아직 더 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고령화 사회가 된 것이다. 등 떠밀려 연장전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이 무승부라면 그나마 패배보다는 다행스럽고 아직 더 해 볼 시간이 있다는 건 반가운 노릇이지만 체력도 떨어지고 흥미도 다해 가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해 가고… 그럼,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어떻게 든 남은 힘을 추스르고 흐려지는 정신을 그러모아 연장전을 치러내야 한다.
젊어서는 강 건너 푸른 초원을 동경해 끝내 건너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 본 그곳에도 소 똥이 뒹굴고 녹슨 빈 깡통과 비닐봉지들이 널브러져 있음을 보았기에 멀리, 높이 가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안다.
대량화로 유실됐던 정체성을 회복해 가며 그저 나 다운 삶을 살아내고 싶다.
효율성으로 함몰된 멈춤과 묻어 둔 관심을 되찾아 내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무모한 경쟁에서 벗어나 내 호흡으로 숨 쉬고 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아직 경기가 남았으니 인생을 이렇게 살았다고 자신할 것도, 저렇게 살아라고 권면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고령화로 주어진 시간을 스캇 팩 박사가 말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위해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