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매일매일이 생애 처음 맞는 날이며, 또한 남은 삶의 첫날이다.
그래도 그 길이 낯설거나 크게 두렵지 않았음은 앞서 간 선조들의 기록이 남아있고 선배들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름 책 속에서 길을 찾고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마치 악몽 인양 아예 눈조차 떠지질 않는다. 어렵사리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주변이 생소하다. 온통 나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시니어들 투성이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고령사회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한가운데 나 자신이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내 이것이 꿈이 아님을 실감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 손목 잡혀 동네 환갑잔치에 따라갔던 기억과 대비되어 지금의 내 나이를 떠올리니,
아! 나도 모를 탄식이 새어 나온다.
인생 후반전에 와서 고령화, 고 실업화, 디지털화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파온 우물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웰빙에서 웰 다잉으로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일수록, 한 곳에 정착해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 우물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그 속에 갇힌 채 울부짖음은 단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우물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고막만 울릴 뿐이다. 몇 해전 우물에서 나오기라는 의미의 ‘웰아웃팅’이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밖에 있는 느낌이었다.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2017년 8월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를 거쳐 10년 내에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중년 세대로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뭐라도 준비하고 대처해야 할 것 같은 데, 필요한 정보도, 도움 줄 만한 경험자도 딱히 보이질 않는다. 어찌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들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주변에 누구도 고령사회를 살아 본 사람이 없다. 이제부터는 전대미문이며 전인미답의 길을 가야 한다. 오늘 내가 디지털 세상이라는 흰 눈 위에 남길 내 발자국은 내 자식과 손주 그리고 후손들에게는 옳든 그르든 고령사회를 살아가는 레가시가 될 것이다. 해서 더욱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2025년, 앞으로 수년 내에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게 되고 생산 인구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소비의 시대가 열린다. 개인당 국민 소득 3만 불의 문턱에 걸려 멈춰 선 지 20년이 넘는다. 어쩌면 끝내 여기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과거 6~70년대 이 나라를 굶주림의 후진국으로부터 끌어내 중진국으로 옮겨낸 게 공장에서 밤을 지새운 20대의 처자들이라면, 이를 다시 한번 선진국으로 끌고 갈 세대는 오늘의 시니어들이다. 나이나 권위가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미지의 앞날을 리드할 때다. 리타이어(Retire: 은퇴)는 말 그대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전후 반전을 뛰느라 땀으로 얼룩진 운동복을 새것으로 갈아입고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맬 때다. 비록 경기 도중에 게임의 규칙이 바뀌어서 체력 안배가 어렵고 낯설어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어야 한다. 경기 시간이 늘어난 첫 경기인만큼 내가 뛰는 이 시합은 후배들에겐 성공적인 모범이 되거나 반복돼서는 안 되는 실패의 사례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종료 시간을 계산하며 달려왔는데, 갑자기 늘어난 연장전을 제대로 치러 내기 위해서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방향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경험은 최고의 자산이지만 동시에 최대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최적화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