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텔스바흐 수업』을 읽고 교실에서 질문이 삶이 되는 수업을 설계하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청소년에게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교사는 그 참여를 돕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수업』을 읽고, 필자가 생각하는 교실에서 실천 가능한 수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본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질문과 참여가 실제 삶으로 이어지는 수업을 설계하는 방법을 다룬다.
토론을 위한 주제를 억지로 가져올 필요가 있을까.
학생들의 일상 속 궁금증,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 질문이 더 힘이 세다.
그들의 세계와 연결된 주제는 참여 의지를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가능하다면 주제 선정 과정에 학생을 참여시키자.
학생의 제안이 담긴 주제는 수업을 생생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의나 인권과 같은 주제는 신중해야 한다.
난민 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단순 찬반으로 나누는 순간, 학생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개념과 가치를 함께 짚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육기본법 제6조는 말한다.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교사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과연 가능한가.
이미 의도성이 깃든 학교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필자가 생각하는 교사의 중립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다양한 시각을 함께 보여주고,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학생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태도다.
토론 속에서 학생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진짜 중립이 아닐까.
교과서도 자료다.
하지만 교과서에는 이미 교육적 의도와 가치가 담겨 있다.
학생들이 토론 자료로 활용할 때, 은연중에 교사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순하다.
학생이 직접 자료를 찾고, 자신의 관점으로 구성하게 한다.
교사는 안내자일 뿐, 학생이 스스로 자료를 만들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교사의 ‘중립’은 실질적으로 지켜진다.
토론은 꼭 찬반으로 나뉘어야 할까?
한쪽 입장을 정해 토론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양측 관점을 모두 살펴볼 기회를 주면 ‘반대를 위한 반대’는 줄어든다.
보이텔스바흐 수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고, 공동의 이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는 경험을 한다.
보이텔스바흐 수업은 ‘생각해 보는 수업’에서 멈추지 않는다.
학생이 수업에서 나눈 이야기를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실천은 거창할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수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
강요나 평가 수단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나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교사는 학생의 실천 가능성을 열어주는 안내자이자,
생각을 확장시키는 촉진자다.
퍼실리테이터로서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고, 자료를 찾고,
논의를 통해 자신의 삶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수업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 각자의 일상 속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