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필요해지는 순간
학년 및 업무 배정표는 늘 간단하다.
숫자 몇 개와 업무명 몇 줄.
그러나 그 간단함 속에서
누군가의 1년은
이미 결정된다.
나는 늘 학교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 왔다.
내 역량의 한계 안에서 학교를 돕고 싶었고,
그게 교사로서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여겼다.
나보다는 남을,
개인보다는 학교를,
내가 맡고 싶은 학년보다는
학교가 필요로 하는 학년을 먼저 생각했다.
그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내게 학교의 배려가 필요한 순간에 서 있다.
나는 병가를 사용할 예정이고,
병가 이후 다시 학교로 복귀할 것이다.
다만 복귀 이후의 내 건강 상태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학년과 업무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고 있다.
담임교사보다는
전담교사가 체력적으로 덜 부담이 될 것 같고,
업무 역시 솔직히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
다만 복귀 이후의 내가
버텨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배려를
받고 싶을 뿐이다.
한때는
내가 없으면 학교가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학교에 헌신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인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학교는,
누군가 한 사람이 없어도
결국은 굴러간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학교를 위해 나를 미루기보다,
내 상태를 배려받고 싶은 심정이다.
그동안 누군가를 배려해 왔다면,
이제는,
지금은
나 역시 배려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