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이 되는 밤

리셋되는 학교, 남겨지는 태도

by 차미레
학년은 배정된다.
그러나 수업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서 다시 만들어내는 일,
나는 그것을 해마다 배워간다.


학교는 3월이 되면

모든 것을 다시 정리한다.


교실의 자리 배치도,

시간표의 칸도,

업무 분장의 줄도,

사람의 위치도.


작년의 애씀은 생활기록부 속 문장으로 남고

교무실 책상 위의 이름표는 바뀐다.


해마다 우리는

다시 배치되고

다시 호명되고

다시 처음이 된다.


아이들만 새 학년을 맞는 것이 아니다.

교사 역시

해마다 낯선 사람이 된다.


익숙했던 교실도

다른 숫자를 달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학년은 숫자이지만

그 숫자는

아이들의 말투를 바꾸고

수업의 속도를 바꾸고

교사의 하루를 바꾼다.


그래서 학년 발표 하루 전은

기대와 체념이

같은 의자에 앉아 있는 밤이다.


어디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조용히 바라는 숫자가 있다.


그 바람이 부끄러워

괜히 담담한 척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리셋되는 순간에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업무는 배정된다.

자리는 배치된다.

그러나 수업은

그 위에 다시 세워야 하는 일이다.


설명 대신 질문을 고민하고,

통제 대신 구조를 설계하며,

관계를 엮어

교실이라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일.


학교는 해마다 리셋되지만

교사로서의 나까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남고

실패도 남고

끝까지 붙들었던 태도도 남는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과 함께

조금의 믿음을 품는다.


내일,

어떤 숫자가 적혀 있든

나는 또 한 번

주어진 자리에서

수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리셋되는 것은 자리이지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올해도 다시 확인하게 될 테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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