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의 쉼 끝에서 마주하는 5년 만의 담임
3월과 4월을 비워두고 5월에 교실로 돌아간다.
조금 늦은 시작이지만, 나는 다시 수업 앞에 선다.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안고.
#5월의 복귀
나는 3월과 4월을 쉰다.
학교가 가장 분주한 계절을 통째로 비워둔 채,
잠시 교실 밖에 머문다.
3월은 늘 시작의 달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교실의 공기를 정돈하고,
우리 반의 질서를 천천히 세워가던 시간.
그 가장 바쁜 두 달을
이번에는 건너뛴다.
그래서일까.
‘5월 복귀’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두렵다.
#5년 만의 담임
아마도 5학년 담임을 맡게 되겠지.
5년 만이다.
지난 15년 중 10년은 전담교사로 지냈고,
담임은 5년뿐이었다.
학교는 늘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기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학교 운영, 업무 조정, 보이지 않는 일들.
교실 밖의 역할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럼에도 놓지 못한 것이 있다.
수업.
교사가 된 첫해부터 지금까지
나는 해마다 공개수업을 해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지는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수업하는 사람이다.’
#두려움, 그리고 설렘
5월에 들어가는 교실에는
이미 두 달의 시간이 쌓여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로를 알고
자기들만의 리듬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사이로 내가 들어간다.
조금 늦게 합류하는 담임.
그 사실이 마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조금 더 어려 보이면 좋겠다.
아이들과의 거리를 빨리 좁힐 수 있다면.
말투를 바꿔볼까,
옷차림을 바꿔볼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더 공부해볼까.
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들은 겉모습보다
자기를 진심으로 바라봐 주는 어른을 더 빨리 알아본다는 걸.
그래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설렌다.
5월의 교실 문을 여는 순간을 상상한다.
어색하게 서 있는 나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이제부터 우리가 함께할 시간입니다.”
그 말을 건네는 장면을
나는 이미 여러 번 떠올렸다.
#다시, 수업
학교 운영에 더 많은 시간을 써왔지만
결국 나를 교사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수업이다.
아이들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예상 밖의 대답에 숨이 멎고
그 생각을 붙잡아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가는 시간.
그 긴장감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3월과 4월의 쉼은
내 수업을 멈춘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더 깊어지게 만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수업의 정점
올해, 나는
내 수업의 정점을 찍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점이 아니라
나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점.
“그래, 나는 여전히 수업하는 사람이다.”
5월에 조금 늦게 들어가더라도
나는 늦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장 단단한 한 해를 만들고 싶다.
두 달의 쉼을 지나
나는 다시 교실로 간다.
두려움도 안고,
설렘도 안고.
그리고 다시,
수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