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언제 설명해야 하는가

설명이 러닝을 멈추는 순간

by 차미레
설명은 교사의 가장 익숙한 언어다.
그러나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
사고가 멈추는 경우도 있다.
교사는 종종 묻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인가,
아니면 사고가 더 머물 시간인가.


설명은 교실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다.

개념을 정리하고,

혼란을 줄이며,

학습의 방향을 빠르게 맞춘다.

그래서 설명은

수업을 안정시키는 익숙한 방식이 된다.


그러나 설명이 항상

러닝을 돕는 것은 아니다.


설명은

사고가 시작되기 전에 들어올 때

종종 사고를 대신해 버린다.


아이들이 아직

자신의 생각을 만들기 전이라면,

설명은 이해를 돕기보다

해석의 자리를 채워버린다.


그 순간 교실에서는

하나의 생각이 확산되는 대신

하나의 설명이 공유된다.


겉으로는 모두가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고는 아직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러닝은

이미 정리된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명이 너무 이르게 들어올 때

아이들은 자신의 질문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이미 정리된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편리하다.

그러나 편리한 설명이

생각을 오래 붙잡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사는

설명 이전의 시간을 견디게 된다.


생각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간,

서로 다른 해석이 떠오르는 시간,

말보다 침묵이 조금 더 많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사고를 밖으로 꺼내기 시작한다.


설명은

그 이후에 들어올 때 의미를 가진다.


이미 여러 개의 생각이 존재하는 자리에서

설명은 사고를 대신하지 않는다.

대신 그 생각들을 연결하고

더 넓은 맥락 속에 놓이게 한다.


그때 설명은

답이 아니라

사유를 확장하는 언어가 된다.


교사는 이제 묻게 된다.


이 설명은

아이들의 사고를 대신하려는가,

아니면 이미 시작된 사고를

더 멀리 데려가려는가.


설명은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교실의 흐름을 결정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설명이 먼저 오면

사고는 줄어든다.

사고가 먼저 오면

설명은 깊어진다.


교사는

언제 설명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먼저 이것을 묻게 된다.


지금 이 교실에서

사고는 이미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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