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비로소 들린다

조신영, 박현찬의 『경청』이 말하는, 마음을 얻는 방식

by 차미레
우리는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답을 정해둔 채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짐작하고, 판단하고,

그 위에 나의 생각을 덧붙인다.


그래서 많은 대화는

듣지 못한 채 시작되고,

말하려는 마음으로 어긋난다.


경청은

듣는 기술이 아니다.


먼저

나를 내려놓는 태도다.


여기서 말하는 ‘빈 마음’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두는 선택이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서만

상대의 말은

왜곡되지 않고 들어온다.


교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 순간,

아이의 말은 더 깊어지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열게 만든다.


그 질문은 길지 않다.


그동안 지켜본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장면을 짚고,

짧게 진심을 건넨다.


“그때 친구를 기다려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이 한 문장으로

아이의 마음은 열린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사람들은 되물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때 속상했겠네.”

“그래서 그렇게 한 거구나.”


이 짧은 말들은

상대에게 이렇게 전한다.


나는 지금

네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어쩌면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듣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듣지 못한다.


내 이야기를 할 기회를 기다리느라,

상대의 말을

흘려보낸다.


결국 누군가는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입을 닫는다.


흙으로 만든 찻잔이

쓸모를 가지는 이유는

그 안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도 같다.


비워야 담을 수 있고,

담을 수 있어야

비로소 연결된다.


변화의 시기일수록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깊이 듣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


말하는 것은 지식이지만,

듣는 것은 지혜다.


그 지혜는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힘에서 시작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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