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에서 이긴다는 것의 착각

제퍼슨 피셔 『잠시 멈춤』을 통해 다시 묻게 되는 대화의 목적

by 차미레
우리는 종종 이기는 대화를 좋은 대화라고 믿는다.
하지만 논쟁에서의 승리가
이해의 시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을 이기는 순간이 아니라,
마음을 만나는 순간을
다시 묻게 된다.


논쟁에서 이기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멈춘다.


이미 결론에 도달했다고 믿는 마음은

더 이상 상대를 향해 열려 있지 않다.

그 확신은 단단하지만,

그만큼 닫혀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논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남기는가.


‘왜’라는 질문은

원인과 결과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논쟁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시도에 가깝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말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던

상대의 고군분투와 두려움,

혹은 조용히 붙들고 있던 희망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대화는

설득의 영역에서 벗어나

이해의 자리로 이동한다.


교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아이들은 자주

누가 더 맞는지를 두고 부딪힌다.

조금 더 빠르게 말하는 아이,

조금 더 논리를 갖춘 아이가

이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교사는

그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더 정확한 말과 더 분명한 기준으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 순간 교실은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리된 침묵에 가깝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결론을 내리는 대신

질문을 남기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는지.


정답을 가르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아이의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질문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억울함이었고,

오해였고,

때로는 그저

한 번쯤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논쟁은 이미 끝났지만,

이해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튼튼한 관계는

말의 기술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관계는

어떤 마음으로 대화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서서히 형성된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연결,

서로를 통해 조금씩 확장되는 경험.


그것이 대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전송은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연결은

그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살아 있게 만든다.


진정한 연결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이해와

그 이해를 드러내는 인정이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래서 대화에는

또 다른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움이 있어도

상대의 마음을 묻는 용기,

그리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


논쟁에서 이기는 일은

순간의 결과를 남기지만,

이해에 도달하는 일은

관계를 남긴다.


그리고 교실에서

우리가 끝내 남겨야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연결인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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