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앤드루스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가 남긴 하나의 질문
우리는 늘 묻는다.
왜 그렇게 했니.
하지만 정작 묻지 않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니.
우리는 늘 묻는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니.
하지만 돌아보면
그 질문은 늘 결과 이후에 던져진다.
선택의 순간은
대개 조용히 지나가고,
우리는 그 장면을 놓친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는
바로 그 ‘선택의 순간’에 대해 묻는 이야기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끼던 한 사람이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며 깨닫는 것은
단 하나였다.
삶은 결국
내가 선택한 것들의 결과라는 사실.
교실에서도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된다.
아이는 숙제를 하지 않는다.
친구를 외면한다.
수업에서 스스로를 지운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왜 그렇게 했니.”
하지만 그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너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 거니.
이 책은 선택을 잘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택 이전에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 질문은
교실에서 더 절실해진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
누군가의 말투 때문도 아니고, 환경 때문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은 결국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
아이들에게 이 문장은 조금 버겁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나는 지혜를 찾아 나서겠다.
나는 남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
교실은 경쟁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돕는 선택,
배려하는 선택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을 선택한다.
아이들은 자주 말한다.
“나중에 할게요.”
하지만 삶은 늘
지금이라는 자리에서만 움직인다.
교사는 때로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을 보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이 말은 거창하지만
교실에서는 아주 작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번 더 해보는 선택,
포기하지 않는 선택.
그 반복이
결국 한 사람의 방향을 만든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아이는 불평을 선택하고,
어떤 아이는 감사를 선택한다.
그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시선이다.
오늘 나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
아이들은 자주 스스로를 포기한다.
한 번의 실패로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결론 내려버린다.
그래서 교실에는
용서가 필요하다.
타인을 향한 용서보다
자신을 향한 용서가 먼저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겠다.
나에겐 믿음이 있다.
이 문장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교사에게 더 깊이 남는다.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아이를 바라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 믿음이다.
오늘도 교실에서는
수많은 선택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조용히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우리는 그 모든 선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다만
묻는 사람으로는 남을 수 있다.
지금,
너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니.
그리고
아이들의 선택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선택을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