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교실에서
조금 특별한 아이를 ‘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빛은,
언제나 모두를 비추고 있는 걸까.
빛난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는 순간도 포함하고 있을까.
교실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
조금 다르고,
조금 더 강하게 빛나고,
그래서 쉽게 눈에 띄는 아이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특별하다’는 말로 부른다.
그 이름은 이해를 위한 배려일까,
아니면 더 이상 묻지 않기 위한 방식일까.
그 별들은 종종 말한다.
세상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그 말은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이야기 뒤에는
함께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아이는 상처를 받고,
어떤 관계는 금이 간다.
때로는
그 균열이 쌓여
누군가가 교실을 떠난다.
조용히 무너지는 관계는
대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늦게 발견된다.
우리는 그 장면 앞에서
망설인다.
그 아이를 이해해야 할지,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지.
그 별을 지켜야 할지,
교실을 지켜야 할지.
이 선택은 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더 먼저 지킬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는 오랫동안
선을 긋는 교사로 살아왔다.
경계 안에서의 자유를 믿었고,
그 선이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그 선을 반복해서 넘어온다.
그때마다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이 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특별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어디까지를 허용해야 할까.
나는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교실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별함은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면제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경계는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함께 남겨두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한 아이의 자유가
다른 아이의 안전을 흔드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어쩌면 교실은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빛이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조금씩 조율해 가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빛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도 나는
그 경계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번에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교실에서의 빛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질문을 끝내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름으로 덮어두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