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혼자 만들 수 없었다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대신, 아이들이 자기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은 교실을 만들어왔다.
그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지, 이번 5월 다시 묻게 된다.
이제 한 달 후면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5년 만에 맡는 담임,
그리고 4학년.
열한 살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
다른 반은 이미 3월에 시작되었지만
우리 반은 5월에 시작된다.
조금 늦은 출발이다.
아이들끼리는 이미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나와의 관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시작은
수업보다 먼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선을 긋는 교사로 살아왔다.
아이들이
내가 정해놓은 그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믿는 교사.
억압으로 질서를 만들기보다
경계 안에서의 자유를 선택해 왔다.
그것이 내가
교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종종
조용한 교실을 좋은 교실이라고 말한다.
흐트러짐 없이 돌아가는 수업,
예측 가능한 반응들.
그 안에는 분명 안정이 있다.
하지만 그 질서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줄이고 있는 순간들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자라왔다.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교사가 되었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느낀다.
모범생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는지를.
나는 아이들이
모범생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학생으로서 보호받기를 바란다.
실수할 수 있고,
흔들릴 수 있고,
때로는 선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는 자리.
그러나 동시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은 분명하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존엄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함께 살아가는 교실을 깨뜨리지 않는 것.
나는 그 경계를 분명히 해왔다.
그 선 위에서
아이들이 자기 방식대로
자기 속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은 물러나
지켜보는 교사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 방식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교실은
교사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나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함께 방향을 맞출 때
비로소 하나의 교실이 된다.
나는 이끌 수는 있지만
혼자서 완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만들기보다
함께 가는 교실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조금씩 속도를 맞춰 가는 교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잠시 멈추더라도
결국은 함께 걸어가는 반.
이번 5월,
조금 늦게 시작되는 우리 반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나는 여전히
선을 긋는 교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 안에서 펼쳐질 교실은
이전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 교실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완성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