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니

교실을 떠난 시간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차미레
수업을 멈추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교실이라는 풍경 속에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


수업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겼다.


그것은 내가 계획한 시간이 아니었다.

몸이 멈추면서

수업도 함께 멈추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낯설었다.


아침이 되어도

교실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

칠판 앞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교사는 오래도록

수업이라는 리듬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자리에 앉고

교과서를 펼치는 순간

하루가 시작된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교사가 되어 간다.


그래서 수업이 멈추면

삶도 함께 멈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업을 멈춘 날,

나는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은

수업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침은 여전히 밝아졌고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나는 교실 밖에서

그 시간을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수업이라는 풍경 속에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


교실은 늘 분주하다.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설명이 이어지고

또 다른 활동이 시작된다.


그 속에서는

무언가를 멀리서 바라볼 틈이

거의 없다.

살아내기에 급급하다.


잠시 멈추고 나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질문처럼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수업을 서둘러 진행했을까.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기다려 줄 수는

없었을까.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함께 생각했는가였던 것은

아닐까.


수업을 멈춘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교사는 늘 수업 속에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한 발 떨어져 서야

그 의미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리서 바라보면

비로소 풍경이 보인다.


가까이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나는 지금

그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 날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칠판 앞에 서게 될 것 같다.


수업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업을 조금 더 오래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기 위해서.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잠시 교실 밖에 서 있다.


이 멈춤이

완전히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시간은

수업을 떠난 시간이 아니라


수업을

조금 더 멀리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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