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껴안고 함께 나아가는 교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하는 법

by 차미레

일본 기업과 합병한 한 한국 회사가 있다.

규모는 두 배로 커졌지만, 조직적 시너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장은 그 이유를 ‘문화 차이’에서 찾는다.

실제로 임원 회의는 서로의 방식이 달라 자주 어긋나고,

결정 이후에도 미묘한 불편과 침묵이 뒤따른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조금 달리 던지고 싶다.

“과연 이것이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서로가 충분히 함께 경험한 일이 없어서일까?”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말하는 방식도 다르고, 일의 속도도 다르다.

‘다름’을 설명하는 데 그치면, 우리는 거기서 멈춘다.


그보다는,

각자의 다름을 하나의 공통된 목표에 어떻게 모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목표는 분명하다. 회사의 성장.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성취와 보람을 얻는 일.


그렇다면,

이미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이 누적되어 있는 이 상황에서

그 기억을 다시 꺼내 묻고 설명하는 것이 정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은 부정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경험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건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던 학생에게,

그 원인을 꼬집으며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너는 원래 이걸 못 했잖아.”

“이 단원, 지난번에도 틀렸잖아.”

이런 말들은 교정보다 상처가 되기 쉽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경험을 건네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계산에 늘 약한 아이가 있었다.

매번 틀리기 일쑤였고, 자기도 수학 시간만 되면 표정이 굳곤 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아이가 틀릴 수 없는 문제 하나를 칠판에 적었다.

다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고, 나는 그 아이를 불렀다.

그 아이는 조심스레 정답을 말했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았어.

다음 것도 한번 해볼래?”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문제를 풀 때 눈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단 하나의 긍정적 경험이,

수많은 부정의 기억을 덮었다.


나는 믿는다.

부정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덮이는 것이라고.

그 덮이는 일은,

교사의 말이 아니라 학생의 경험으로 가능하다고.


조직도, 교실도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같을 수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이 서로의 틈을 메우고

시너지를 만드는 관계가 가능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새로운 경험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부정적 경험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덮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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