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 줄을 적는다

by 차미레

딩동!

메일 알람이 울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왠지 될 것 같았고, 역시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될 사람은 된다’라는 말.

된 사람만이 웃으며 내뱉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조용히 혼자, 소심한 V를 날려본다.


‘소중한 글을 기대한다’라는 브런치 팀의 당부가 무색하게도,

글은커녕 한동안 로그인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기뻐서 당장 글을 썼을 텐데.

이미 한 번 내려놓았던 탓일까,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내 글을 더 기다리는 ‘1호 팬’을 만났다.

그 따뜻한 응원이 멈춰 있던 내 마음을 천천히 움직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굳게 닫혀 있던 그 문이, 뜻밖에도 가볍게 열리며 나를 반겼다.


“작가를 소개해 주세요.”

그 말이 낯설고 어색했다.

내가 작가라니.


글을 써온 시간만큼은 이미 수십 번도 넘게 작가였을지도 모른다.

출간한 사람이 작가라면, 두 권의 책을 낸 나도 분명 작가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사회가 말하는 ‘작가’라는 이미지는 여전히 나와는 먼 이야기 같다.


누군가 말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무조건 써야지.”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이 있을까?


글로 밥을 먹지 않는 이상,

매일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다.

개학 전날 밤, 밀린 일기를 몰아 쓰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그때의 어설픈 글쓰기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었을지도.


글쓰기가 늘 아름답진 않다.

연재를 결심한 순간, ‘마감’이라는 고약한 친구가 따라붙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감은 나를 몰아붙이면서도 결국은 나를 살게 했다.


“오늘도 썼다”라는 안도감,

“지금 살아 있다”라는 감각.

그것이 마감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마감은 때때로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늦은 시각에야 겨우 글을 시작하게 되면,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복잡했다.

그럴 땐 이야기마저 꼬이고,

내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나와 타협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글을 쓰고, 퇴고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자.

최고는 아닐지라도 ‘오늘의 최선’을 담자고.


자정이 되면 예약된 글이 자동으로 올라온다.

그 순간, 나도 독자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시 멈춰 글에 마음을 기대 본다.

그건 우리가 함께 누리는 조용한 사치이자 작은 축복이다.


자정에 올라온 글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하루의 시작에 글을 만나는 이도,

하루의 끝에 마음을 내려놓는 나도

그 한 편의 글로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 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단어가 되는 순간,

나와 감정 사이엔 조심스러운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 덕분에

나를 덜 미워하고, 때론 덜 몰아붙이며,

가끔은 다정하게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 엄마로서의 고민, 한 사람으로 사는 삶을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가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오늘도 교사로서,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나를 들여다본 글들이

어느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글은 그렇게 ‘혼자’에서 ‘함께’로,

교사에서 사람으로,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었다.


글을 통해 나를 단단히 붙잡고,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이제는 나만의 일기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나는 오늘도 쓴다.

삶이란 문장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어딘가의 당신에게 닿기 위해.

오늘도 한 줄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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