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지식을 넘어 아이들의 삶과 맞닿아야 한다
교육은 의도된 활동이다.
아무 목적 없이 반복되는 설명, 아무 방향 없이 주어지는 숙제,
그런 건 교육이라 부르기 어렵다.
교육은 언제나 뚜렷한 방향을 가져야 한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삶’을 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가장 핵심적인 활동인 ‘수업’은 무엇을 향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업은 ‘삶의 전이’가 최종 목표여야 한다.
수업은 지식 전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지식이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배우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배워서 뭐에 써요?”
이 질문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수업이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아이들이 수업 안에서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수업의 끝은 삶인가?
며칠 전, 한 학급에서는 ‘문제 해결’을 주제로 협동 수업을 진행했다.
여섯 명씩 조를 나눠,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상황을 연극으로 꾸미는 활동이었다.
“놀이 시간 줄다리기하다가 친구가 넘어졌을 때”
“한 아이가 계속 말해서 수업이 방해될 때”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꺼내며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했다.
한 조에서는 리더 역할을 두고 아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넌 매번 네가 하겠다고 하잖아.”
“그럼 너는 맨날 빠지잖아.”
아이들의 날 선 대화 속에서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지켜봤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조용히 두 아이를 불렀다.
“연극은 어떻게 마무리했니?”
“… 결국 서로 바꿔가며 하기로 했어요.”
“좋았어. 그게 오늘 너희가 배운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더 중요하단 걸.”
지식보다 더 중요한 걸 배운 시간이었다.
그건 교과서에도, 시험 문제에도 담을 수 없는 것.
‘삶의 장면’이 수업 안으로 흘러든 순간,
아이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다.
#수업은 삶의 예행연습이다
우리는 종종 수업을 ‘훈련’처럼 여긴다.
문제 풀이, 암기, 반복.
마치 잘 외우고 잘 푸는 아이가 더 훌륭한 것처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연습이 실전에 어떻게 연결되느냐이다.
사회는 정답을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할 건가?”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러니 수업도, 아이들이 그런 질문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정답을 맞히는 교실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갈등을 조정하고, 실수해 보고,
다시 도전하는 교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삶으로 전이되는 수업
아이들은 수업이 끝났다고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배움은 종이 울린 이후에 시작된다.
‘오늘 있었던 그 일, 나였어도 저렇게 말했을까?’
‘친구랑 싸울 땐, 나도 저 방법을 써봐야지.’
그렇게 수업에서 배운 것은 아이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그게 전이다.
배운 것이 삶에 녹아드는 것.
수업이 더 이상 교과서 속에 머물지 않고,
아이의 말투, 태도, 선택에 스며드는 것.
우리는 매 수업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수업은 삶과 닿아 있는가?”
“아이들이 이 수업을 통해 어떤 삶의 방식, 어떤 태도를 익히고 있는가?”
그 물음을 놓치지 않을 때,
수업은 단지 ‘학습의 장’을 넘어서
삶을 준비하는 연습장이 될 수 있다.
결국, 좋은 수업이란
아이가 살아갈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