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교사의 무대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다.
칠판 앞에 서서 설명하고, 질문하고, 정리하고, 평가하는 교사.
지금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르친다는 건 정말 무엇일까.”
처음에는,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라 여겼다.
시험 점수를 높이고, 수업을 흐트러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
그것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없었다.
요즘 나는 자주 멈칫하게 된다.
‘이건 정말 가르치는 걸까?’
‘나는 지금 누구의 배움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걸까?’
질문은 반복되지만, 대답은 점점 흐릿해진다.
수업이 ‘전달’이 되는 순간,
교실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아이들은 질문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정적은 교사의 말보다 더 크게 울린다.
우리가 바라는 건,
숨 쉬고 살아 있는 교실이다.
이제는 관점을 바꿀 때다.
가르친다는 것은 더 이상 무대 위의 독백이 아니다.
배움의 무대를 학생에게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학생 주도 수업’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학생이 수업을 주도한다는 것은,
곧 학생이 수업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과연 교사는 그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시,
그저 말로만 “학생이 수업의 주인”이라 되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는 묻는다.
“학생이 수업을 주도한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학생 주도 수업은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이 가장 깊이 발휘되는 수업이다.
수업의 ‘판’은
교사의 교육과정 문해력으로 치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 위에서 학생은
스스로 배우고, 질문하며,
생각을 잇고 성장해 간다.
수업은
학생들이 마음껏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삶에 맞는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곳이어야 한다.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각자의 생각이 모여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클 수 있다”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수업이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행동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학생 주도성이다.
물론, 쉽지 않다.
속도는 더딜 것이고,
합의는 생각보다 어렵고,
때론 엉키고 거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겪는 동안
우리는 인간이 가진 사회성을 배우고,
교실 너머 진짜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교사는 더 이상 단순한 설명자가 아니다.
지식을 나눠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판을 설계하며,
함께 길을 찾아가는 동반자다.
수업의 주인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한
용기를 품는 일이다.
가르친다는 것.
결국, 함께 성장하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