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열고 질문으로 닫다

by 차미레

시대가 바뀌고 교육과정도 달라졌다. 수업의 형태 역시 다양해졌다.

그러나 수업의 중심, 교실의 숨결, 아이들의 성장 그 모든 길목마다

언제나 ‘질문’이 있었다.

화려한 자료, 세련된 발표, 탁월한 설명이 수업의 외형을 만든다면,

질문은 수업의 심장이었다.


질문은 아이들의 생각을 흔들고, 교사의 시선을 바꾼다.

교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질문이다.


질문은 교사의 것인 동시에 학생의 것이기도 하다.

교사의 질문은 수업을 이끌고,

학생의 질문은 수업을 뒤흔든다.

그 둘이 마주치는 순간,

수업은 비로소 살아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교실에서 질문은

교사만의 도구로 남아 있고,

정답을 유도해 내기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선생님, 왜 이걸 배워야 하죠?”

겉으론 아이들이 던진 말이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삶과 연결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질문으로 호흡하기


수업은 문제 풀이로 시작될 수도 있고,

하나의 이야기로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작은, 질문이다.


질문은 아이들을 수업의 청취자에서

사유의 주체로 변화시킨다.

좋은 질문은 정답을 찾게 하기보다,

더 많은 질문을 품게 한다.


아이들이 되묻는 순간,

“왜요?”,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른 경우는요?”

그 물음 속에서 나는

교실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정적 속에서 고개만 끄덕이는 교실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그 균열 속에서 생각이 움트는 교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배움의 장면이다.



#질문하는 교사, 질문하는 아이


“자, 이제 질문해 볼 사람?”

그 단순한 말이 교실을 얼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질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질문이 곧 실수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질문이 ‘잘난 척’처럼 보이고,

틀릴 수도 있는 위험으로 느껴지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질문을 가르치기로.

그건 단지 ‘무엇을 묻는가’가 아니라,

질문해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먼저 교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질문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교실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다.

아이들이 마음껏 질문할 수 있으려면,

교사가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수업 전체를 질문에 할애한 적도 있었다.

어떤 수업은 오직 아이들의 질문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이런 걸까요?”

“선생님, 작가가 진짜 이렇게 생각했다고 믿으세요?”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그 수업이 완벽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날의 교실에서 분명한 건 하나였다.

아이들이 나보다 더 많이 말하고 더 깊이 생각했다는 것.

학생이 주인이 된 완벽한 수업이었다.



#교사인 내게 질문은


나는 질문을 배우지 못한 채 교사가 되었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은 공간에서 자라

정답을 유도하는 퍼즐 같은 질문만 던졌다.


그 길은 익숙하고 안전했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가두는 좁은 길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정답을 정해두지 않은 질문.

아이들의 삶에 닿아 있는 질문.

나조차도 확신하지 못한 채 던지는 질문.


그때부터 수업은 덜 정돈되었지만,

훨씬 더 살아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아이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나는 더 깊이 귀 기울이게 되었고,

그 안에서 비로소 ‘함께 배우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아이들과 함께 질문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배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질문은 수업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태도다.


질문을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이 삶에서 마주할 수많은 선택 앞에서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는 일이다.


나는 바란다.

내 수업 속 질문 하나가

언젠가 그들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를.


정답을 말하는 사람보다,

질문을 품은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그리고 나는 오늘도 질문으로 돌아온다.

모든 길의 시작과 끝에, 다시 질문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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