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e a facilitator, not a teacher.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그 사이에 경계가 있을까?
우리는 오늘의 답이 내일도 통할지 확신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세상은 VUCA를 넘어 BANI 시대로 접어들었다.
*VUCA- 변동적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사회 경제적 환경
*BANI- 쉽게 부서지고, 불안하고, 비선형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런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방식의 지식을 주입하고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그 지식이 언제, 어떻게, 왜 필요한지를 느낄 기회는 부족하다.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점점 더 지쳐간다.
가르친다고 다 배우는 것도 아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흘러가는 수업 속에서,
지식은 교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그저 시험과 성적으로만 평가되며 교실 안을 맴돈다.
시대가 바뀌었고, 교육 현장에서도 "자기 주도적 학습"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 스스로 왜 배워야 하는지, 그 배움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필요성이 절실함으로 바뀔 때에야 비로소 자기 주도적 배움이 가능해진다.
학생들 저마다 성향도, 환경도, 목표도 다르다.
그렇다면 교육 역시 그 다양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교실이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거기서부터다.
그들이 선택하고, 결정하며, 서로의 지혜를 모아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
교실은 학생들이 사회라는 정글로 나가기 전, 마음껏 실험하고 실패하며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배움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학습의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수업의 구조도, 교실의 공기도,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교육은, 교사 혼자서 설계하고 끌고 가는 ‘일방향 전달’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조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나는 2020년부터 수업에 퍼실리테이션을 도입했다.
교사가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20여 년간 익숙했던 갑옷을 벗어내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확신은 퍼실리테이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모두가 동등하다.
모두에게 지혜가 있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
그 말은 곧,
교실 속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존재로 나아가야 함을 뜻했다.
나는 조금씩, 천천히,
수업의 주도권을 학생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학생이 다르면, 같은 주제도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같은 교과서를 펼쳐도, 같은 흐름으로 수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묻기 시작했다.
“이 수업, 너희는 어떻게 하고 싶니?”
나는 그렇게 다른 수업을 일상화했다.
‘정답’보다 ‘질문’이 중심이 되는 수업,
‘설명’보다 ‘경청’과 ‘토론’이 살아 있는 교실.
퍼실리테이션은 기술이 아니라 교사의 태도였고,
그 태도는 내 수업을, 아이들을,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의 기록이다.
내가 교실에서 부딪히고, 실험하고, 깨달은 것들.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조각들.
그리고 여전히 정답은 없지만,
함께 길을 묻고 싶은 교사들에게 건네는 ‘말 걸기’다.
교사는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가능성과 실천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도록
배움의 장을 설계하고, 관계의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존재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교육적인 일은
학생을 ‘학습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로 만나는 일이다.
퍼실리테이터.
그것은 교사의 새로운 이름이자,
배움의 중심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는 역할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이 수업, 함께 만들어볼래요?”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그 여정을 함께 걸을 누군가 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