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리조또, Risi e bisi
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화사해지는 계절입니다. 문 밖을 나서면 싱그러운 햇살 아래서 반짝이는 예쁜 꽃망울들이 가득입니다. 가지 위에서 막 피어난 꽃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긴 겨울을 견뎌낸 노고가 짐작 가서인지 마음속 응원이 절로 피어납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대공황의 시련과 독일과의 연대라는 조건 속에서 나라를 전시 체제로 개편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우선순위와 계파 관계가 조정되었다. 경제적 자급자족을 위해, 정권은 경제 규제를 강화하고 사생활에 대한 간섭을 늘렸다. 무솔리니는 스파게티를 먹는 민족은 로마 문명을 재건할 수 없다면서, 국민에게 수입 파스타 대신 국내산 쌀의 소비를 권장했다.
케빈 패스모어, 파시즘(교유서가)
4월 25일은 이탈리아가 나치군과 파시스트로부터 해방된 독립기념일(festa della liberazione)입니다. 베네토 지역(베네치아 인근)에서 봄의 리조또 Risi e bisi를 먹는 날이기도 합니다. 햄과 야채를 넣어 수프처럼 묽게 만들어먹기때문에 리조또보다는 죽에 가까운 식감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기대신 완두콩과 시금치퓨레를 넣어 꾸덕하면서 신선한 향이 나는 리조또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식 리조또. 리조또에 사용되는 이탈리아 쌀은 크게 3가지입니다. Arborio, Vialone nano, Carnaroli. Vialone 품종은 일본의 쌀이 베네치아로 들어간 뒤 이탈리아 북부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쌀입니다. 알이 작고 전분 함량이 높은 한국, 일본 쌀과 같은 동아시아 자포니카 품종으로 분류됩니다.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용되는 리조또 쌀 Carnaroli는 이 Vialone 품종을 더 크게 개량시킨 쌀입니다.
벼 품종은 딱 하나만이 아니다. 벼를 찧어, 벼의 껍질을 까고 낟알을 깎아 우리는 쌀을 얻는다. 이때 상대적으로 짧은 쌀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둥글고 짧은 품종 곧 단립종, 자포니카(Japonica)다. 일본이 일찍이 벼 품종 연구와 단립종 육종을 주도했으므로 자포니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단립종보다 상대적으로 가늘고 긴 쌀이 나오는 벼인 장립종도 있다. 이것이 인디카(Indica)다. 한국인이 흔히 안남미 또는 동남아 쌀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인디카에 드는 쌀이다.
인문학협동조합, 거짓말 상회(블랙피쉬)
화려한 기술도 비싼 재료도 필요가 없다. 흰쌀만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주걱을 들고 있기만 하면 된다.
“계속 저으라고. 밑바닥까지 확실히. 여기 눌어붙었잖아!”
처음 리소토를 알려준 이탈리아인 요리사는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쌀이 자기 조국을 모독하는 증거인 양 화를 냈다. 나는 그때마다 “오케이”를 남발했다. 불리지도 않은 리소토 쌀이 제대로 익으려면 족히 20분은 저어주어야 한다. 상념에 빠져 주걱을 허술히 저으면 꽁지 머리를 한 이탈리아 요리사는 귀신같이 내 옆에 와 있었다. 승강이를 하느라 둘이 거의 기진맥진할 무렵 겨우 쌀이 익었다. 여기에 파르메산 치즈와 버터를 더하면 가장 기본이 되는 리소토 비안코 risotto bianco가 된다. 쌀은 속까지 완전히 익었지만 형태가 물러지지 않았다. 쌀의 얇은 껍질 사이로 탱탱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접시에 올려놓으면 자연히 퍼져나가되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의 농도였다. 맛은 담백했지만 진했고 심심했지만 달큼한 짠맛이 났다. 많은 요리가 그렇듯 모순된 식감과 맛이 공존해야만 제대로 된 리소토임을 힘들게 알았다.
정동현,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수오서재)
잘 만들어진 리조또는 쌀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으면서 주변의 녹진한 크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단 15분 만에 완성되는 리조또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을 버틴 쌀을 사용합니다. 숙성기간에 비례해 가격도 높아집니다. 묵힌 쌀이 웬 고급 식재료냐고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쌀 표면에 생긴 자연스러운 균열은 소스가 빠르고 균일하게 들어가는 길목 역할을 합니다.
쌀에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마 갓 도정한 햅쌀이 좋을 거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숙성한 쌀, 즉 묵은쌀을 선택하는 셰프들도 있다. 심지어 7년씩이나. 쌀을 금속 캔에 넣고 질소를 충전해 밀봉한다. 공기와 접촉해 산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쌀알은 수분을 빼 말리는 ‘드라이 에이징’ 방식으로 7년간 숙성시킨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쌀알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촘촘하게 나 있다. 한국에서는 쌀이 이렇게 변하면 품질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바로 이 균열에 소스가 적절히 베어드니 더욱 맛있는 리소토를 만들 수 있다.
문정훈,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선택한 ‘7년 묵은 쌀’, 이미영기자, <동아일보>
//재료// (1인분 기준)
쌀 50g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50ml
완두콩 50g
시금치 50g
물 3T(45ml)
간 파마산 치즈 15g
버터 10g
물 500ml
치킨스톡 큐브 1/2(5g)
*리조또를 만들 때는 재료를 미리 계량해 준비한 뒤 시작합니다*
리조또.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여러 번 연습이 필요한 음식입니다. 쌀의 전분을 최대로 끌어내면서도 팬 바닥에 눌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사용하려는 화구와 쌀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쌀이 익을 때까지 전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술도 필요합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화구 근처에 재료를 계량해 준비해놓습니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적당한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육수, 냉장고에서 막 꺼내놓은 차가운 버터, 갈아둔 파르마산치즈.
물 500ml에 큐브 치킨스톡 절반(5g)을 넣고 녹여줍니다.
/ 리조또는 졸여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육수는 묽은 것이 좋습니다.
불에 올린 육수에서 김이 나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입니다.
/ 조리가 끝날때까지 김이나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마른 팬에 씻지 않은 쌀 50g을 올립니다. 1분 정도 볶다가 쌀에 손을 댔을때 열기가 빠르게 전해지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50ml를 넣어줍니다.
껍질 깐 완두콩 50g도 와인과 함께 넣어줍니다.
와인이 바글거리며 빠르게 졸아들면 준비해둔 따뜻한 육수를 추가합니다.
/ 육수가 졸아들면 반 컵씩 추가합니다. 수분이 날아가면서 바글거리는 속도가 느려지면 도구로 휘저어주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쌀에 와인을 부은 시점에서 12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조금씩 먹어가며 쌀의 익는 정도를 확인합니다.
시금치 50g과 물 3T을 넣고 갈아줍니다.
/ 쌀이 다 익기 직전 시금치 퓨레를 넣고 섞어줍니다.
시금치 퓌레가 적당히 졸아들면 불을 끄고 육수 반 국자, 차가운 버터,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고 빠르게 섞어줍니다. 뽀얗고 걸쭉한 농도로 1분 정도 저어주면 리조또가 완성됩니다. (초당 2회전)
봄을 알리는 싱그러운 리조또 Risi e bisi였습니다. 자세한 조리과정은 유튜브에 영상으로 올려두었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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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달몬트 | dalm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