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지긋지긋한 독서강박

[에세이] <쾌락독서> - 문유석

by 지하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쓴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 아니면 하루 2~3시간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다. 그 종류도 다양했는데 소설, 에세이, 철학, 인문, 심지어는 관심사가 아니었던 역사와 과학까지, 도서관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앞으로 나를 괴롭힐 독서강박이 찾아올지도 모른 채로.


내게 독서강박이 생긴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들린 중고서점에서 다음에 서평을 쓸 책들을 고르고 있었다. 평소 소설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곧장 소설코너에 달려갈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나의 발걸음은 뜻밖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MD추천 베스트셀러 Top 100".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자는 게 나의 0순위 독서다짐이었것만. 평소보다 살짝 조회수가 높았던 서평이 대중적인 책이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른 사이 내 손에는 관심 없던 베스트셀러 서적이 두권이나 놓여있었다.


책을 고르는 일뿐만 아니라, 책을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다.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소개란에 적어두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 권의 책을 마주해야 한다. 물론 나는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는 게 취미이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지만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생긴 날이다.


일정이 있는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기로 했지만, 그것마저 어려운 날들이 있다. 전날 너무 늦게 잠을 잤다거나,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거나, 그냥 일찍 일어나기 싫은 날들이거나. 그런 날들엔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욕하며 죄책감에 빠진다.


아무래도 나에겐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는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주간 완독 독서 목록에 생긴 불편한 빈칸과 블로그 100일 챌린지에 표시된 X표 모양까지. '하루에 한 권을 읽기로 했다면서 왜 안 읽었지?'라고 묻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지만,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강박의 무게가 너무 크다. 나를 위해 시작한 이 활동이 되려 나를 망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하지만 이런 나와 반대로 책 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로 칭한 판사겸 작가 "문유석"이다.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그는 그의 저서 <쾌락독서>에서 자신의 경험에 빗댄 "가벼운 독서법"에 대해 얘기한다.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는 그의 독서법에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이 수많은 책들을 그런 방식으로 읽었다고?" 나와는 정반대로 책을 대하는 그 모습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샘솟았다.


책을 고르는 그의 방법도 상당히 특이하다. 그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을 스스로 '짜샤이 이론'이라 부르는데, 이는 중식당에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먹는 밑반찬인 "짜샤이"에서 따온 듯하다. 책을 고르기 전에 맛보기로 30페이지 정도 읽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덮는다. 아무리 내용이 훌륭하고, 유명한 작가가 쓴 책이더라도 자신에 취향에 맞지 않으면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편식독서"에 가까워 보이는 그의 독서법 덕분에 그가 꾸준히 책 읽기에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성장시키기는 것에 집중하여 책을 읽은 나와 달리 독서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당연 책이 싫어질 리가 없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던가. 지루함에도 꾸역꾸역 책을 넘기며 완독 한 과거의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껏 책을 읽으며 숨겨진 작가의 의도나, 책이 주는 메세지 등에 집착에 "독서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야 책을 읽은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만 같았고, 서평을 쓸 때도 더 멋있어 보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독서법은 오히려 내게 강박을 만들었고, 더 이상 온전하게 책을 즐기지 못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기보단 남들에게 잘 읽힐 것 같은 책을 골랐고, 꾸준한 독서를 증명해야겠다는 결과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옥죄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다. 학업도 중단하고, 취업준비도 내팽개친 채 오직 읽고 쓰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한 것은 나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인지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점차 스스로에게 쫓기는 독서 강박증 환자가 되었다. 마치 대출까지 풀로 땡겨서 걱정을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앞으로 약 2년 하루에 한 권의 책을 꾸준히 읽을 예정이다. 그러나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벌써 즐거운 독서라는 레일에서 이탈하기 직전인 상태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예전처럼 책과 친해질 수 있을지. 스스로를 독서강박으로 이끈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책을 대해야 할지... 뭐, 결국 정답은 내가 내리는 것이지만 책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는 있었다. 그 힌트는 다름 아닌 "독서를 괴로워하지 말고 즐겨라"라는 것. 그의 충고를 되뇌며 스스로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내일을 꿈꾼다. 내일은 조금 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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