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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준호 Jul 11. 2023

2023년 상반기 회고

나는 회고한다, 고로 일한다.

어느덧 2023년도 절반이나 지나갔다. ‘회고’라는 말이 꽤나 거창하긴 하지만, 상반기를 잘 살아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반기도 잘 살아내 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갑자기 웬 회고?

사실 갑자기는 아니고요.


작년 3분기 즈음부터 내 일에 대해서 가끔씩이라도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뭐, 기록해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하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다.


1. 일단 HR 직무는 특성상 루틴한 업무들이 많다.

나 역시 하루의 대부분을 루틴 업무들로 보내고 있다. 채용 플랫폼을 통해 들어온 서류들을 취합하고,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프로세스 진행 여부를 확인하고, 후보자에게 연락해 인터뷰 일정을 확정 짓고, 만약 인바운드로 적합한 인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다이렉트 소싱을 통해 우리 회사에 대해 소개하고 포지션을 제안한다


* 하이어링 매니저(Hiring Manager): 포지션을 오픈한 팀의 사람들 중 채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 주로 리드나 시니어 급에 해당됨.


나는 노션으로 그날의 To-do List를 정리해 두는데, 루틴 업무들은 특이사항이 없는 한 굳이 기록하지 않다 보니 루틴 업무들로 바쁜 날에는 To-do List가 텅 비어있을 때도 있다. 바쁜 한 주를 보냈는데도 To-do List에 적힌 건 몇 개 없을 때면 기분이 괜히 공허해지곤 했다.


일에 대해서 기록한다는 건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루틴한 업무를 했다면 그 루틴이 모여 어떤 결과를 이루어냈는지를 점검하고,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일들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 나의 성과는 누가 대신 기억해 주지 않는다.

슬랙과 주간 회의, 1on1을 통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팀리드와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있지만, 결국 이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설령 그 일이 당시에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고민하고 실행해 본 경험치를 통해 나중에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거대로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는 썩 좋지 않아서 이 모든 과정들을 오랜 기간 동안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게 아이디에이션 단계에서 끝나 버린 일이거나, 잘 마무리되지 못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회고는 결국 나의 소중한 경험치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막는 일종의 올가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년 말에도 회고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1년의 이야기를 한 번에 쓰려고 하니까 쉽지 않아서 결국 쓰지 못했다. 대신, 2023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적어두고, 이 목표들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틈틈이 체크해 보기로 했다. 분명 그러기로 했는데…


출처 : <모죠의 일지>


정신을 차려보니 6월이 됐다. 이러다 진짜 늦겠다 싶었다.



퍼블리와 잡플래닛에서 회고와 성과 정리에 대해 참고할만한 아티클들을 발견해서, 여기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2023년 상반기 회고를 해보기로 했다.



0. 회고 준비하기

회고하기 전에 살펴본 것들


현재 대부분의 업무 관리와 일정 관리는 노션과 구글 캘린더를 사용하고 있고, 슬랙을 통해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노션은 팀 스페이스뿐만 아니라 개인 스페이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이라, 노션에서 일차적으로 소재를 수집했다.


다만, 노션은 업무의 완료 여부와 아카이브에 집중해서 작성되었기에 관련해서 어떤 일정으로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했는지를 구글 캘린더와 슬랙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회고이기 때문에 철저히 시계열로 정리해도 되겠지만, 많이들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는 것 같아서 나도 그 방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1. 개편은 나의 힘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0을 1로 만드는 것도 물론 재밌고 보람 있는 일이지만, 내가 더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1을 100으로 만드는 것이다. 2023년 상반기에는 우리 팀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더 멋지고 효율적이게 만드는 일들을 했었다.


· 채용 공고를 대규모로 개편했다.

: 그동안에도 조금씩의 수정은 있었지만, 개편이라고 부를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는데, 2023년을 맞아 채용 공고를 전반적으로 개편했다.


이번 채용 공고 개편은 “후보자가 공고를 보고 스스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채용에 있어서 후보자 경험(Candidate Experience)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내가 이 회사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떤 구성원들과 함께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지원하게 된다면 어떤 채용 프로세스를 겪게 될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 상상의 끝에 긍정적인 감정이 남는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고 안에 직무별 성장 포인트와 예비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를 포함시키고, 채용 프로세스 역시 각 단계에서 들어오는 면접관과 우리가 이 단계를 통해 어떤 부분들을 확인하고 싶은지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성장이라는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동료들이 있는 우리 조직의 모습이 보다 더 잘 드러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 다이렉트 소싱을 관리하는 스프레트시트를 개편했다.

: 우리 팀은 내가 합류하기 훨씬 전부터 다이렉트 소싱(Direct Sourcing)을 꾸준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던 팀이다. 점점 서칭 하는 포지션이 다양해지고, 비교적 채용 긴급도가 높은 하나의 포지션을 여러 명이 서칭 하는 경우도 생기다 보니 서칭 DB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노션으로 옮기려는 시도도 해봤는데, 이미 스프레드시트에 너무 많은 데이터들이 적재되어 있어서 ‘노션으로 옮기지 말고, DB로 쓰고 있는 스프레드시트의 사용성을 높여 보자’ 쪽으로 의견이 모이게 됐다. 한창 스프레드시트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 빠져 있었던 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능들이 무엇인지 팀원들로부터 들어보고, 이 기능들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면 좋을지를 고민해 ‘다이렉트 소싱 시트 v.2.0’을 만들었다.


VoC를 듣고 반영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었다.


시트 개편 이후, 다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시로 아이디어를 주셨고, 주신 소중한 아이디어들은 즉시 반영하고 업데이트를 이어갔다. 지금은 v.2.3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 다이렉트 소싱 시트 개편기는 시트가 조금 더 안정화된다면, 팀 브런치를 통해서도 다루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부디 나의 의지가 허락하기를 바라며.



2. 배움 모아 태산이다

작은 배움이 모여 큰 깨달음을 만든다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로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역량 중 하나는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다. 특히나, 내가 몸담고 있는 산업은 트렌드가 정말 빠르게 변해서 HR 트렌드뿐만 아니라 산업과 직무의 트렌드도 꾸준히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HR 관련 컨퍼런스를 여러 번 참관했다.

: 팬데믹 기간의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행사들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점점 엔데믹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때 즈음, HR 관련 오프라인 컨퍼런스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Wanted con. HR 2023 (좌), HR MEGA TREND 2023 (우)


당연하게도 모든 컨퍼런스에 참여할 수는 없었고, 지금 우리 팀이 당면한 과제에 대한 다른 회사의 사례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든지, 나중에 한 번쯤 우리 회사에서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싶은 사례를 다루는 발표들을 주로 봤던 것 같다.


컨퍼런스의 내용들은 기록해서 팀원들끼리 공유했다. “이미 우리 잘하고 있네!”라고 느끼는 부분들도 있었고, “이렇게 하면 우리 더 잘할 수 있겠다!”라고 느끼는 부분들도 있었다. 우리 팀이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음에 든든함을 느끼기도 했다.


· SNS광고마케터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 아무도 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흥미가 있어서 한 번 따봤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크게 2개로 나누면 SA(검색 광고)와 DA(디스플레이 광고)로 나눌 수 있는데, 검색광고마케터 1급이 SA 위주로 다루는 자격증이라면, SNS광고마케터 1급은 DA 쪽으로 조금 더 집중한 자격증이다. DA 내용만 있는 건 아니지만, SNS광고 특성상 아무래도 DA의 비중이 높다.


검색광고마케터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생긴 자격증인데도 이력서를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채용을 하면서도 공고 홍보나 프로모션을 위해 DA 매체를 쓸 때도 있고 해서 호기심에 응시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오로지 시험을 위해 공부한 것이다 보니 이젠 띄엄띄엄 기억나지만, 그래도 매체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3. 우리, 조금 더 알아갈까요?

우리 회사 동료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일이라면 일이지만, 꼭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는 “HR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구성원들에게 먼저 다가갈 줄도 알아야지”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일의 관점으로만 다가가는 건 뭐랄까… (더 좋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정 없다. 비록 업무로 만난 사이지만, 업무를 넘어서 인간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 개발자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 개발자 채용에 많이 인볼브 되어 있다 보니 지금까지도 개발자분들과 소통할 일들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이 하이어링 매니저 분들과의 소통이었고, 가벼운 주제보다는 진중한 주제들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 채용 브랜딩 담당자분이 개발 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조명하는 인터뷰 아티클을 기획 중이라고 하셔서, 기획 미팅이나 인터뷰 당일 미팅 등에 동행했고, 결과적으로 2개의 아티클을 발행해 냈다. 인터뷰 때 질문을 하기 위해서 컨플루언스 문서들도 꼼꼼히 읽고, 슬랙 히스토리들도 많이 살펴봤는데, 이런 노력 덕분인지 개발자분들과 더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후로 커피 한 잔 하며 캐주얼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개발자분들도 많이 생겨서, 앞으로도 더 많은 접점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 회사 캐릭터로 굿즈를 만들어 나눔 했다.

: 일단 내가 우리 회사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원래는 덕질의 마음(?)으로 우리 팀 팀원들끼리만 소소하게 나눠 쓰려고 마스킹 테이프를 사비로 만들었다.


그러다 다른 팀원분들이 오며 가며 마스킹 테이프를 보시더니 갖고 싶다고 많이들 말씀해 주셨고, 이를 계기로 혹시 몰라 제작했던 여유분들을 회사 슬랙의 중고거래 채널을 통해 나눔을 진행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눔이 일찍 끝나버려서 조금 놀랐다.


이럴 때는 제법 뿌듯해요


나눔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이름만 알았던 분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기도 하고, 언제 또 새로운 굿즈가 나오는지 궁금하다며 메시지를 주신 분과 긴 티키타카가 이어지기도 했다.


조금 더 여유가 될 때 2차 나눔도 진행해 보고,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년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더 다이내믹한 하반기가 되리라


일단 내가 PM을 잡게 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PM님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에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는데, 이런 진심 어린 지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면서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의지가 불타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곧 이 회사에서 또 한 번의 입사 N주년을 맞게 된다. N주년 전까지 한계 없이 성장하기를, 그리고 2023년 하반기를 회고할 때 즈음엔 상반기보다도 더 할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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