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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y 17. 2022

죽지 못하는 세상

내가 죽고 싶을 때 나는 죽을 수 있을까?

내 명이 다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초연히 나의 죽음을 기다릴 수 있을까?

내가 죽어간다 느낄 때 나의 주변인들은 나를 죽어가게 둘까?

죽지 못하는 세상, 우리는 더 이상 죽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외할머니는 살아생전 어머니에게 연명치료를 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 했으나 막상 외할머니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생명줄이 끊어지려 할 때 즈음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에 자신의 신념을 놓아버렸다. 이대로 엄마를 가게 둘 거냐! 자식 된 도리로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살려봐야 하지 않느냐! 연명치료를 하면 얼마는 더 살 수 있는데 저리 둘 거냐! 등등 외동딸인 어머니 혼자 결정하기에는 천근만근의 무게가 되는 일에 주변인들은 한마디씩 거들자 그만 어머니는 외할머니와의 약속을 등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머니에게 연명치료를 한 것을 한없이 후회한다 하시며,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라는 외할머니가 부탁하신 말씀을 똑같이 남기셨다.

작년 시월 우리 삼 남매는 어머니를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절대 하지 말라는 연명치료를 시행했다. 어머니는 온몸에 관들을 꽂고, 주삿바늘을 꽂고 며칠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시다 저세상으로 가셨다.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머나먼 땅에 있던 나에게 동생은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할 수 없다 했다. 숨이 붙어있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으나 나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이제 보내주자 말했다. 하지만 멀리 사는 누나들에게 어머니의 온기 남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동생은 눈물과 죄책감을 안고 두 누나를 위해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선택했다. 하지만 두 딸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온몸을 휘감던 주삿바늘과 관들이 사라진, 오직 하얀 시트로 덮인 어미를 만났다. 하지만 나는 비정하게도 어머니가 잘 가셨다 말했다. 이미 뇌사상태인 어머니의 심장만을 기계에 의지해 억지로 뛰게 만듦으로써 내 어미는 살아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미 내 어미는 내 어미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여자를 보내며, 과연 나는 죽고 싶을 때 제대로 죽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죽는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아나, 죽고 싶을 때 죽지 못하고 억지스레 이어지는 삶이 과연 삶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그 말이, 과연 온갖 기계들에 내 몸을 의지해 의식 없이 심장만 뛰고 있을때도 삶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아마도 우리는 더 이상 죽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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