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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Jun 01. 2022

나는 청소부의 아내입니다

3장 여름- 1

어느 대기업에 일하는 이가 남들 잠든 시간 오물 뒤집어쓰며 일하는가?

어느 나라가 놀며 일하는 청소부에게 나랏돈을 막 내어 주는가?

행여나 저 시간과 저 돈을 받는다면 쉽게 다치거나 죽어도 된단 말인가?

당신은 무슨 근거로 이런 댓글을 다는가?

그리고 당신들은 무슨 이유로 저런 댓글에 좋아요를 꾹 눌러대는가?

남편이 청소차에 매달려 일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사건사고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며칠 전 직장 동료의 근무 중 낙상 사고에 마음이 좋지 않던 찰나, 연이어 듣게 된 다른 지역 청소차 폭발사고 뉴스는 무겁던 마음을 한층 더 내려앉게 만든다. 그런데 뉴스 아래 달린 걱정과 위로의 글들 사이 유난히 눈에 띄는 글 하나와 그 글을 공감한다며 눌러놓은 '좋아요'들에 눈길을 뗄 수 없다.

뉴스 속 사고는 누군가 버린 가스 남아있던 컬러 스프레이 통 수십 개가 쓰레기차 압축기로 들어가 으스러지며 마찰을 일으켰고, 이후 남은 가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사고였다. 다행히 소방관들의 발 빠른 조치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여차하면 청소차 뒤에 매달린 청소부들이 해를 입을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쓰는 일 또한 그리 내키진 않지만, 이번처럼 가스가 터지는 폭발사고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준은 아니기에, 청소 담당 관할에서도 이번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아 처벌할 것이라는 이야기로 뉴스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뉴스 아래 적힌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댓글 하나가 화를 치밀어 오르게 만든다.

댓글에는 청소부는 보수나 근무환경이 대기업의 수준을 넘기에 경쟁률 또한 치열하며, 그런 사람들을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아래에는 댓글을 공감한다는 '좋아요' 수가 10개 남짓 보였다. 환경 공무직 시험의 경쟁률이 워낙 높다 보니, 사람들은 으레 저리 몰리는 데는 분명 높은 월급과 편안한 근무환경이 주어짐이라 추측한다. 연차가 올라가며 호봉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급으로 받는 돈은 당연히 대기업의 연봉과는 비교할 바 못되며, 최소 2~3년은 새벽 근무를 서야 하기에 남들과는 다른 일 과로 몇 년을 보내야 한다. 게다가 오물이며 잦은 사고와 부상,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하대를 고스란히 받는 일이 과연 꿀같은 직업이라 말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일을 하는가?

청소부가 되기 전 남편은 타국에서 빈손으로 시작한 신혼살림을 채워보겠다는 일념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일만 했다. 넉넉한 월급에 몇 년 동안은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도, 상사의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당연하다 여기며 자기 몸 돌볼 여력도 없이 일만 했다. 천근만근의 피로는 줄곧 피워대는 담배와 잦은 술자리, 생각 없이 밀어 넣는 음식으로 풀다 보니 몸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늘어난 체중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찾아온 협심증과 우울증은 더 이상 돈만 바라보는 삶은 의미 없음을 일깨워주었다. 건강검진을 하기 위한 한국 방문 휴가를 회사에 요구했지만, 넘쳐나는 주문으로 밤낮없이 돌아가는 회사에서 곱게 보내줄리 없었다. 결국 남편은 퇴사했고,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아 지금은 우리 곁에 건강한 가장으로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넉넉하던 생활비가 반 토막이 나니 우는소리가 절로 났지만 다시는 돈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도 있는 길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던 중 눈에 들어온 환경 공무직 모집 소식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는 둥,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뿌듯한 직업이란 둥의 입에 발린 말은 넘기겠다. 남편이 환경 공무직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세 가지이다.

정확한 시간의 출퇴근!

이 당연한 이야기가 한국의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도 인정할 것이다.

정확한 월급!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을 때면 몇 달이고 밀려 받지 못하거나, 회사 이익이 남지 않는다며 부하직원의 월급을 제 맘대로 조정해 버리는 상사가 존재하는 회사에 다녔던 우리로서는 일한 만큼 제날짜에 월급을 주는 직장이 꿈이 되어버렸다.

정확한 휴가!

주어진 휴가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히 쓸 수 있다는 이 당연한 진리가 예전 직장들에는 통하지 않았다. 설날에도 주말에도 퇴근 이후에도 새벽에도 수시로 밀어닥치는 회사일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던 시절에서 벗어나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권리를 이곳에서는 가질 수 있다.

누군가가 가볍게 써놓은 댓글에 기를 쓰고 내 마음을 늘어놓는 이유는 당연히 요구할 권리를 누리는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다쳐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가졌을 환경 공무직의 치열한 경쟁률에 대한 속뜻을 말하고 싶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과 편한 일감이 있는 곳이아닌, 받을 것을 요구하고 누릴 수 있는 그 당연함이 통하는 직장이기에 오물을 뒤집어쓰던, 새벽 근무를 하던, 공부 안 함 커서 저런 일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말이 들리든 말든 간에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누리고 싶은 이상이기에 경쟁률 또한 치열한 것이다. 살면서 한 번 도 생각해 보지 않은 청소부일이 남편의 천직이 되었다. 그리고 곁에서 그의 노고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워져 우리가 되면 더 이상 쉽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당신과 내가 조금만 더 가까워 지길 바랄 뿐이다.

남편이 청소부일을 하고 나서 아이와 나는 주말마다 쓰레기를 주우러 다닌다. 남편의 노고를 이해하기 위함과 넘쳐나는 쓰레기로 사라질 위기에 닥친 지구를 위해 내가 그리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안위를 위해 선택한 청소부 일이긴 하나 지구 온난화로 온 세계가 위기인 지금, 지구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있다는 사명감 또한 가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청소부의 아내이다. 자기 맡은 바 일에 충실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는 대한민국 청소부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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