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전 해의 업무 성과를 가지고 산정된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되었다. 등급은 S, A, B 등급으로 나뉘었고, 등급에 따른 지급 금액 차등이 있었는데 그 차이는 회의를 통하여 정해졌다. 많게는 월급보다도 많이 받았으므로 꽤나 큰 금액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적게 받으면 정말 받았나 싶을 정도로 통장 잔고에 존재감도 별로 없었다.
한 해동안 아무리 일을 대충 하고, 적게 했어도 그것을 돈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특히 개인의 등급은 비공개로 알려주었는데 S를 받은 사람이 본인의 등급을 공개하며 으스댈 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특히
"너는 왜 S 못 받았어?"
라고 할 때는 정말 화가 났다.
나는 기회가 되면 거의 매번 다면평가 위원회라든가 성과급 기준 산정회의 등에서 위원이 되는 것을 즐겼다. 남들은 그 회의를 들어갈 시간에 교실 정리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며 보낼 텐데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면 방과 후 시간이 전부 날아가 버리므로 굉장히 바빠진다. 게다가 1차로 끝나지 않고 보통 3차 까지는 가야 마무리가 지어진다. 보통은 위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즐거웠던 이유는 그곳에 들어가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민낯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은 당연히 S등급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누구나 이 의견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많은양의 업무를 수행하므로. 그러나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에게는 비교적 수업 시수가 적은 전담교과가 주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역시 '당연한 S등급'일까? 저 의견은 보통 연구부장과 교무부장 본인의 입에서 나온다. 다른 위원들이 긍정의 끄덕임을 할 때 그들의 입가에 살짝 번지는 미소가 보인다.
이 회의에서는 사람들이 1점, 아니 0.5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어느 회의에서, 체육 전담 선생님께서 의견을 내었다.
"전담 교사는 왜 항상 담임교사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담임교사는 많아야 30명의 학생들을 관리하지만 전담 교사는 약 200명의 아이들을 관리하고, 보건이나 영양 선생님은 전교생을 관리하는데 오히려 학생 지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들린다. 내가 몇 가지 물었다.
"그럼 지도하는 아이들 이름은 전부 외우시나요? 어제 누가 지각하고, 조퇴하고, 결석했는지 다 파악하셨나요?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선생님께서 아이들 상담하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것이 담임교사가 매일 같이 하는 일입니다. 많은 아이들을 상대하시는 것에 고충이 있으신 건 맞지만 학생지도 면에서 '더 어럽다'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날에는 이런 의견도 있었다.
"부담임 제도가 새롭게 시행되었는데 부담임을 맡아보니 맡기 전보다 업무량이 많이 늘어난 것을 체감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담임, 부담임, 전담 순으로 점수에 차등을 두면 좋겠습니다."
당시에 부담임 교사는 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평소 업무를 할 일은 따로 없었고, 행사가 있을 때,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 시 아이들 안전을 확인해 주는 일을 함께 했다. 간혹 담임교사가 부재한 날에 담임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과급에서 점수를 더 받아야 할 정도였던가. 결국은 부담임을 하지 않는 전담 교사보다 0.2점을 더 받기로 했다.
또 어떤 회의에서는
"보건 교사나 영양 교사는 담임교사보다 수업을 적게 할 수밖에 없는 학교 상황인데 항상 수업 시수 면에서 가장 낮은 점수만 받아야 하는 것이 정말 불합리적입니다."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래서 학기당 한 학급에 1시간, 2시간, 3시간을 수업했을 때의 점수를 세 등급으로 나누어 일반 교사들과는 별개의 성과급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수정된 기준안을 인쇄하여 2차 회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만족하지 못하고너무 많다하였다.
"보건 교사, 영양 교사. 교사라는 직함을 달았다면 업무가 과중해서 수업을 못하겠다는 말씀 대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담임교사들의 협의하여 수업을 늘려달라고 하셔야 옳은 방향 같습니다. 수업을 하지 않으시려 하시는데 왜 교사가 되신 건가요? 수업 시수가 많다 하시는데 담임들은 최대 주당 29시간을 수업합니다."
그 선생님은 그 이후로 나와 인사하기를 꺼려했다.
회의는 보통 3차례 정도 진행되면 결말이 난다. 서로 치열하게 누가 더 많은 점수를 받고 싶은가 겨루는 것도 몇 번하면 지치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부끄러워 다음 회의 때에는 입도 벙끗 못하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회의록을 작성하고, 기준안을 수정한 수정본을 만들어야 했다. 보통 교감 선생님들의 몫이 맞지만 그들을 컴퓨터를 잘 못하거나 매우 느렸다.
나는 주로 회의가 끝나면 그 자료들을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왜냐하면 그 일도 역시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고, 다른 사람이 했다가는 언제나 한두 가지를 빠뜨리거나, 자기의 의견을 몰래 넣어보기도 하고, 오타도 냈다. 성과급 총점이 100점이 넘어가거나 100점도 안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표 편집을 할 줄 몰라 칸을 잘못 나누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답답함을 유발했고, 내가 오류를 발견하여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음 회의 때까지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통 내가 스스로 자원을 했다.
나는 휴직을 제외하고 실 근무 한 11년 동안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었지만 학교를 이동할 때는 으레 기대한 등급보다 낮은 등급을 받았으며, 부장을 했어도 S등급에서 제외되기도 했었다. 휴직을 하지 않은 담임이라면 거의 받을 일이 없는 B등급도 받았다.
등급에 이의가 있는 경우 기간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교감선생님께 찾아가 이의 신청을 문의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의 신청을 해봤자 등급의 변경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의 신청 제도는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