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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Sep 11.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6. 업무라는 건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서로 누가 더 힘든가를 겨루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느 직업이 힘들지 않은 것이 있으랴. 특히나 사회초년생 때는 누구나 힘들다.


친구들과의 겨루기에서 압승을 하지는 못해도 교사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깜짝 놀라게 만들 수는 있었다. 일단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수업 준비하는 시간보다 일반 업무처리에 시간을 더 많이 쓴다는 것에 두 번 놀라고,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는 것에도 놀라며, 방학 때도 그저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연수를 받거나 출근을 한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신규 발령을 받자마자 나에게 떨어진 업무는 '학부모회'였다. 3월 1일 자로 발령받은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3월 셋째 주 수요일에 열리는 학부모총회를 개최하고 임원을 선출하는 것이었다. 당장 부지런히 준비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학부모총회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작년과 동일하게 하세요."


학부모총회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작년과 동일하게 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돈다.


"일단은 계획서 공문을 써서 결재를 받으세요."


공문을 쓰는 것은 그 어느 곳에서 자세히 배운 바가 없다. 어떨 때에 어떤 식의 내용으로 쓰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결재를 받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공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 선생님들은 모두 학기 초라 바쁘기 때문에 자세히 물어볼 대상이 없었다. 다행히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작년 문서를 참고하라고 파일 보내 주셨다. 받은 문서에서 날짜만 고치면 어쨌든 완성은 되었다. 결국은 물어볼 사람이 없어 교장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신규들을 잘 가르쳐주서 감사했다.


계획서는 어찌어찌 결재완료가 되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 며칠이 흘러갔으므로 남은 날이 얼마 안 되었다. 학부모총회 당일에는 임원 선출도 해야 하고, 회의 진행도 해야 했다. 학교현황에 대한 유인물도 제작 및 복사해서 배부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내가 그래도 여차저차 잘 처리해내기는 했다. 그러나 학부모총회는 학교의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기존의 교사들이 담당했어야 하는 업무 아닌가 의문이 갔다. 안내장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계획서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하기에는 정말 정말 간이 너무 부족했다. 나는 같은 학교에 동시 발령받은 신규교사 4명 중 최초 야근자가 되었다.


이렇게 바쁜데 야근을 안 할 수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업무 파악이 완료되고 경력이 쌓이면 여유로움이 생기겠지. 내가 신규라서 그런 거겠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행정실에 경비시스템 카드키를 받고, 야근을 해 보는 것. 원도 산간지방, 마을과는 살짝 떨어진 학교에서 밤까지 근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무서움을 많이 타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캄캄한 건물은 좀 무서웠다. 나밖에 없는데 무슨 소리라도 나면 더더욱. 퇴근을 하려면 혼자 전교 교실을 다 돌아보며 문단속과 소등까지 완료해야 했다.


"그래도 초과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잖아?"


만약 초과근무 수당을 받고 싶으면 미리 신청해서 승인을 받아둬야만 했는데 일의 양을 미리부터 정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기에 고민하다가 오후에 신청하면 보통 승인이 나지 않았고, 사후 승인 건은 수당 지급이 불가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미리 교장선생님과 구두로 협의된 경우에만 승인을 해주는 관례가 있어 어려움이 더욱더 컸다. 그리고 퇴근 시 당직실에 들러 초과근무대장에 수기로 날짜, 퇴근 시간, 서명을 기록해야 했는데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결국에는 수당 없이 그냥 잠깐씩 근무를 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그렇게 시작한 수당 없는 야근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5시였으나, 5시 칼퇴는 '이데아'에만 있는 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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