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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Sep 09. 2023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5. 월급이 만들어낸 우울감-2

당시 내가 아는 명품 브랜드는 구찌 밖에 없었다. 다른 브랜드는 얘기 들어도 기억도 잘 못했다.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는 것도 없었다.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명품 가방이란 무엇일까. 왜 명품은 다들 가방만 사는 걸까. 왜 가방을 명품으로 사야 하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가방은 물건을 담는 용도이고, 저렴한 것을 들어도 충분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다른 선생님들의 가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꽤나 많은 선생님들이 명품으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녔다. 어떤 이는 남자친구가 선물해 줬다고도 하고, 결혼기념일이라 남편이 사줬다고도 하고, 성과급으로 질렀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하나쯤 사볼까?'


하나 정도는 살 수 있겠지.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내 눈에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은 120만 원 정도, 예뻐 보이는 것은 200만 원 정도 했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하나 살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변하고, 출근을 하려면 새로운 옷들이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조금 편한 옷을 입고 출근했다가 다른 선생님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지!"


교사는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하는 걸까. 아이들과 운동장도 나가고, 교실에서 놀이도 하는데 정장은 신축성이 없어 불편하고, 세탁도 세탁소에 맡겨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정장인가.


당시 쇼핑을 가 보면 브랜드 여름 원피스는 보통 10~20만 원대, 여름 블라우스는 5~6만 원대, 가을 재킷 20만 원대, 겨울 코트는 40만 원대. 백화점에서는 섣불리 지갑을 열 수가 없었고, 길거리 보세 옷을 사더라도 한 벌에 몇 만 원이다. 계절에 따라 신발도 사야 했고, 화장품도 사야 했다. 체육 수업을 하려면 운동화와 운동복도 필요했고, 현장체험학습을 가려면 모자도 필요했다. 저렴하고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하면 원로 선생님들이 혼을 내듯 한 소리했다. 혼나지 않으려면 차려입어야 했고, 그러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통장의 잔고가 점점 바닥이 났다.


기본 생활비와 얼마간의 적금, 그리고 품유지비. 처음에는 조금씩 쌓이던 돈이 더 이상은 쌓이지 않았다. 게다가 친목회비도 내야 하고, 주변에 경조사라도 있으면 더욱 힘들었다. 어느 달에는 돈이 모자라 엄마께 손을 벌렸다.


'마, 이번 달에만 조금 빌려줘. 적금 만기되면 갚을게요.'


한 번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짓을 그 후로도 종종 했다. 특별하게 사치를 부린 것은 없었다 생각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겨울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 선생님이 겨울 시즌동안 스노보드를 배워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좋지~!"


20대 때 배우지 않으면 언제 배울 수 있을까. 평일 수업을 마치고 야간권을 끊어서 보드를 몇 번 탔다. 아무 장비도 없었기에 렌털샵에서 모두 대여를 했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옷과 보호대, 보드, 부츠 모두 대여하연 꽤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럴 바에는 내 옷이라도 한 벌 장만하면 예쁘고, 딱 맞고, 더 경제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 선생님과 서울 학동역 근처에 보드복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서 상하의 한 벌과 보호대, 고글까지 구매했다. 구매비용은 50만 원 대로 기억하는데, 그 한 번의 소비로 인하여 신용카드에 의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현금으로는 충당이 안 되는, 미리 앞당겨 돈을 사용하는 삶.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보드복을 사지 않으면 좋았을까도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내 월급은 통장에 들어오면 모두 인수분해되어 사라졌다. 주로 신용카드대금으로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금이 필요할 때가 생기면 매우 막막했다. 결국 마이너스 통장도 개설했다. 그때 만든 그 마이너스 통장은 결혼 직전까지도 계속 마이너스였다.


다른 사람들이 사라던 그 명품가방은 도대체 언제 살 수 있는 것일까? 돈 많은 남자친구를 만나면 선물로나 받게 될까. 아니면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그때쯤? 명품 가방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취미생활에 사용한 이후로 시작된 마이너스 인생은 10년이 넘도록 회복이 불가능했다. 용돈을 드리는 효도도 사치였다. 관사를 나와 자취를 시작하니 월세 내기도 빠듯한 것이 교사의 월급이었다.


"난 평생 명품 가방 하나 못 사볼 거야."


뭔가 웃기는 멘트로 들릴 수도 있겠다. 저게 왜 우울 포인트지? 그렇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우울해졌다. 명품가방뿐만 아니라 그 어떤 취미생활도, 옷이나 장신구도, 좋은 음식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모든 것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면 직업을 언젠가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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