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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Jan 04. 2024

원하는 것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가벼워진다.

뜨거운 사명감과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얼마전에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제주도 여행 이후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선물해 줄 용기가 생겼고 10년이 넘도록 마음 한켠에 간직한 채 미루고만 있었던 일을 드디어 실행하게 되었다. 티켓팅을 하고 회사에 휴가 보고를 하고 숙소 및 일정을 짜는 한 달 동안 정말 놀라울 만큼 모든일들은 척척 진행되었다. 마치 이 일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 처럼.

나는 파워J지만 계획하는 거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나의 불안함을 낮춰주고 싶어 미리 계획을 짜는 편이다.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맞물려 나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하는 타입.


아무튼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리고 거의 2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선물 받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몇 가지 적어보면


-기내에서 좋아하는 홍콩영화를 실컷 보고

와인과 기내식을 맛있게 먹었던 순간.

-16시간 걸려 도착한 바르셀로나에서 느꼈던 첫 밤공기.

-건축이나 미술에 관심이 1도 없었던 내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경이로움에 가슴 설렜던 순간.

-그토록 원했던 스페인 세비야에서 하루종일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화하는 광장에 홀로 앉아

플라멩코를 보며 황홀했던 순간.

-당일치기 론다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소통했던 경험.

-바다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던 네르하에서의 첫 일출.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포르투에서 와인 마시며 친구와 수다 떨었던 순간.

-동루이스다리에서 일몰보고 피크닉했던 순간.

-저녁에 혼자 벤치에 앉아 버스킹을 바라보며 낭만에 물들었던 순간.

-와이너리투어에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었던 순간.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마치 어제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 감정들은 내 마음에 남아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내가 뭘 이뤄냈어. 얼마를 벌었어. 어떤 것을 가졌어.

라기 보다는

물론 이런것들을 이뤄내면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이

올라가고 결국엔 삶이 충만해지겠지.

하지만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므로

부족한 나의 무엇인가를 채우려 성장에만 집중하다보면 항상 무엇인가를 찾거나 이루려고 쫓기듯 살아갈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려 한다면 그것이면 이미 충분할 것이다.


사실 유럽을 다녀왔다는 그 한 문장이 꽤나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행복했다고 느꼈던 것들은 따지고보면 무엇인가를 이뤄낸 것보다


-거기서 만났던 사람과 나눴던 대화중에 얘기가 잘 통해서 너무 유쾌했던 순간.

-광활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버터와 잼을 야무지게 발라 빵을 한 입 베어물었던 순간.

-온 세상이 주황빛으로 잔뜩 물든 풍경안에 있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너무 맛있는 와인을 마셨을 때의 그 순간.

-비행기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울었던 그 순간.


이런 순간들은 내 영혼에 확실히 깃들여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이 멀리 있는게 아니라는 말에 점점 동의가 되는것 같다. 아마도 자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내가 원하는 것들이 명확해지고 그 외의 나머지것들은 그냥 탁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가 점점 생겨서겠지. 깊은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두려움 없이 나답게 살고자 선택했던 순간들이 쌓여 결국에는 자기사랑으로 가득했던 2023년을 보내며 나는 다짐했다.


내 영혼에 기록할 수 있는 일들을
더욱 더 해야겠다.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인 결과가 나를 이렇게 용기있고단단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다니.

두려웠던 일들이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아졌다.

내가 이런 신기하고 값진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정말 원했던 순간들이기에.







그리고 또 하나.

생각지도 못하게 인상 깊었던 순간들은


-인기가 많은 바쁜 식당에서 서버가 손님들을 대하는 따스한 태도를 볼때

-버스기사가 손님들을 태울때 진정성이 느껴지는 제스처를 볼때

-와인바에서 술을 따라주는 사장님의 미소를 볼때

등등


내가 아마 결핍을 느꼈던 것이다 보니 그런 순간들이 조금 더 나에게 잘 포착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정말 원한다.

직업의 유명세보다는 내가 나를 설명할 때 나의 가치관과 잘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내 소명 삼아 나의 영혼을 채우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에게는 마쳐야할 과제가 있다.

그리고 아마 마침표를 찍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내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의미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타이틀에 집착하는건 아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한 그 타이틀 말이다.

이런 집착들이 나를 더욱 더 무겁게 만들었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것에 대해 많이 신경쓰며 그들이원하는 사람으로 되기 위해 억지로 애쓰며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빠르게 알게 되었고 크고 작은 역할들을 수행하며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내 삶에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했고 기존의 것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이 충돌은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나는 진짜 나와 첫 만남을 가졌다.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정말 귀한 존재지만 내가 뭐라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하는것 까지 감히 내가 통제하려고 이토록 애를 쓰고 있지?

어차피 다 변화하는 것들이고 내가 바꿀수도 없는 것들인데. 안되는 것들에 이리 목매달며 살고 있는거지?

그냥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면 덜 억울할텐데.

그리고 정작 빛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닌가.


내가 현재가 아닌 이상의 그 어디로 가려고 할지라도

진짜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은 순간 순간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것들을 나에게 선물해주는 나.

내 존재가 너무 버거워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

그리고 점점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는 또 다른 나.


가우디가 했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안토니 가우디는 말했다.
나는 평생 가슴이 이끄는 방향대로
비행하리라.
인생에서 완성은 없다.
삶은 미완성일때가 가장 아름답고 빛나기에.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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