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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Jan 23. 2024

애도해야 할 것들이 많은 나

야단 대신 위로를.

'이쯤하면 됐지' 라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 정도 내가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면

이 정도 성과는 나와야지.

이 정도 내가 양보했으면

너도 그 정도는 나에게 보답해 줘야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의무감으로 삶을 살아갈 것을 곧잘 당부하곤 한다. 그리고 이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은

'분노'와 '서러움'이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거지?

내 계산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자기혐오와 불신으로 가득 차 힘들었던 2021년을 보내며

2022~2023년에는 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드디어 나와 화해했다고 믿었다.

분명히 그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가 조금씩 선명해질수록

동시에 현실에서 느껴지는 이 권태로움과 불폄함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럭저럭, 그냥저냥

버틸 수 있었던 일상들이 이제는 한숨이 푹푹 나올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었다.

고통을 견디는 게 삶의 답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다가도 자기객관화가 덜 된 상태로 완벽한 무엇인가에 나를 맞추려 드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혼란이 난무하는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빨리 내가 원하는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나는 무엇인가 특별하고 대단해야 한다는 자의식 과잉의 오만함에 빠져 날 또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인생에는 답이 없다는데

왜 그렇게 정답을 찾아 퍼즐을 맞추려 하는지 참 모르겠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시선은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나를 매료시키기 바빴고

마침내 용기 내어 첫걸음을 내디뎌보니 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그 찐한 감정은 한시도 바래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속에서 하나씩 마주하는 나의 감정들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이며

어디서부터 이런 생생한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나조차도 납득하기 힘들다.

이게 정말 나의 민낯이란 말인가?


내가 마음을 열고 더욱 더 깊게 알아갈수록

정말 다양한 나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야단치고 제거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모두 ‘애도의 대상’ 이란걸 알고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내 안에 아직 마주하지 못한 많은 슬픔들이 있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들은 보통 분노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그것들을 모두 슬픔이었다.

나도 보호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나도 누군가와 끈끈한 친밀감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나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서로 안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분노와 동시에 처절한 슬픔이 같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자극들이 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잠이 들곤했다. 내 존재에 대한 서러움으로 괴로워하며 밤을 보냈던 무수히 많은 지난날들.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에게 정말 잘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왜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불편할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사실 그것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어린시절의 상처와 거절당했던 경험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하고 있구나 라는 걸 알게되었다.  그 수수께끼가 풀리니 내가 그렇게 반응되는게 무척이나 이해가 되었고 그런 나를 더욱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아 그랬구나.

무서워서 그랬구나.

그렇지.

무서우면 그렇게 반응이 되는거지.

그래서 그랬구나.


아픈 상처를 안고 있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내 마음을 열어 준 나에게 너무 고마웠고 이렇게 꺼내놓을 수 있는 건강한 나에게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내 감정은 타당하구나.

이렇게 옳구나. 이게 맞구나.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내 편이 되기로 다짐했다.

내가 겪었던 상처로부터 내가 너무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 회복되기를 바랬었구나.


이렇게 빠르게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나고

상처받은 상태로 움츠러 들어 있는 사람도 나고

그 두 가지 상태 어디쯤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도 나고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괜찮다고 안아주는 사람도 바로 나.


나의 바운더리안에 두는 것들은 선명하게 지키되

그 경계선을 너무 뚜렷하게 두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조금은 흐릿하게 두면 어때?

-그래도 뭐 괜찮잖아.

이~만큼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모습에 도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는 나 어때?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더욱 꼬옥 안아주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하루 빨리 나아가고 싶어서 망상에 사로잡혀 권태로운 현실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나 어때?

-그 모습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조금 더 애도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다.

조금 더 슬퍼해도 된다고.

조금 더 아파해도 된다고.

그리고 조금 덜 애쓰고 살아도 된다고.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고.




좋아하는 작가님께 받은 꿈만 같은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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