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분노를 아물게 한 소통의 힘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명절이 참 불편했다.
친척들이랑 가깝게 붙어 살아 매주 열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때는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그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며 불편한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나라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고 그것을 통해서 나는 충전되고 채워진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나를 더이상 비난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이해를 하고 난 현재라고 할지라도 불편한 상황들의 연속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런 상황들을 최대한 피해보는게 전부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자극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지고 피로감이 빨리 찾아와 기가 빨리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향과 내향을 반반씩 가진 사람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와 기쁨을 얻기도 하면서 센서가 민감하기도 하여 내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기도 한다. 근데 명절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가족모임이나 친한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나는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나는 사람을 좋아해서 함께 소통하며 친밀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관계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나를 더 지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어김없이 명절은 찾아왔고 사실 몇 주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일들 때문에 나는 또 관계를 회피하고 있었다. 차별이나 공평하지 못하다는 나의 가치관이 목에 탁 걸리면서 억울함과 분노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폭력성으로 감정들이 번지기도 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이제는 명확하지도 않았다. 모든게 다 지쳐만 갔다. 그냥 솔직하게 내 마음은 이렇다, 이런점은 서운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입을 뗄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고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나의 이야기와 욕구를 말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친한 사람들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있었는지에 대해서 놀라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꼬옥 안아주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었다. 여전히 내 말을 하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었던 행동들은 사람들과 더 가깝게 연결되고 내 무너진 욕구도 알아봐주고 토닥여 주는 소중한 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이 싫은게 아니라 솔직한 소통을 하는데 용기내는게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이유들은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방의 판단 평가 비난을 들을 것 같은 불안함과, 다른 사람들이 날 불편해하면서 관계가 멀어져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나의 발목을 언제나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가면을 쓴 채 사람들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듯 멀어지는 듯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다보니 나의 외로움의 깊이는 더욱 더 깊어졌다. 하나씩 나의 가면을 벗겨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나를 채워줄 수 있는 말들을 듣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해주기도 하고 내가 듣고 싶었던 상대에게 듣기도 하고. 나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분노로 완전무장한 나의 두려움은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너무 몰라서 미안해.
우리 딸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너랑 OO랑 엄마한테는 똑같아.
그리고 엄마가 무척이나 사랑해.
그 한마디로 내 마음은 사르륵 녹았다. 억울함과 불편함으로 가득찼던 내 마음은 평온함과 사랑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했고 이내 안정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토록 피하고만 싶었던 나날들이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더이상 가면을 쓴 채 괜찮은척 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