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과 외로움의 씨름
'성장'이 나의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지만 이 말과 다른 느낌을 주는 단어가 요즘 내 마음에 꽂혔다.
바로 '심리적 퇴행'이라는 말.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퇴행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다.
의무감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벗어나 덜 발달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
마음껏 징징대고 유난떨기.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가를 볼때 가장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어떤것에 가장 큰 불편함을 느끼느냐이다.
유독 나는 의존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 같다.
본인이 하면 될 것을 왜 부탁하나.
왜 저렇게 의지해서 남한테 피해를 주는거지?
다른 사람 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게 대체 뭐지?
그런 사람들이 너무 보기 싫어 혼자하기의 달인이 된 나는
무슨 도장깨기 하듯이 모든지 다 혼자서 하며 살아왔다.
부탁하고 부탁받는게 싫어서 먼 거리를 돌아 돌아 가기도 하고
혼밥 혼술 혼뷔페는 물론이고 국내 해외 여행도 다 혼자 다니며 솔로로 지내는 세월도 꽤 길었다.
지인들이 결혼해서 상대방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때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이 너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이 없었을때도 잘 살아왔으면서
본인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왜 저렇게 희생하며 사는거지?
스스로 그들을 꼴불견에 패배자로 칭하며. 쯧쯧거리곤 했다.
나는 그런 대상없이도 (심지어 '신'을 의지하는 사람들 또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얼마나 나약하면 보이지도 않는 신을 의지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간다고. 마치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 마냥.
그렇게 점점 관계에서 순위매기기는 심해지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남을 평가하고 심판하기 바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욕구는 철저하게 무시한채 괜찮은 척 살아갔다.
그렇게 살다가도 어느날은
나는 이렇게 의지하지도 않고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쟤는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의지만 하면서
왜 내가 가지지 못하는걸 쟤는 가진거야? 억울해!
라는 감정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엇을 들킬까봐 그렇게 아둥바둥하며 살아갔을까.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내 마음 안에서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어떤거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 오는 그 불안함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퇴행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껏 나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 그것이 나의 연약함 이라고 한다면 더욱 더 그것을 포장하기 바빴다. 누군가가 그것을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 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은 나를 더욱 더 외롭고 고립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애썼다.
이것은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바로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못하게 차단하고 엄격하게 나를 대하는 모습. 그렇게 억압당한 감정들은 방황을 한채 내 몸 어딘가에 떠돌아 다니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되질 못했던 것 같다.
나도 마음껏 투정부릴 수 있는 그런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무척이나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런 관계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고 싶다.
스스로 아무리 채우려 해도 외부에서 채워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심리적 퇴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존중하는 마음 못지 않게 그 작업은 우리 삶에 필요하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인정하기 싫었을까?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이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이 한번에 멈추고 내가 원하는 안전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존하기는 싫고 외로움을 견디기엔 너무 처절하고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안팎으로 채워지고 성숙해져 가는 내 삶을 잠시 기대해 볼 뿐.
변하지 않는다 한들 어쩌겠는가.
이게 나라는 사람인걸. 그리고 그것이 마음의 본질인 것을.
그냥 내가 조금 더 솔직하게 나답게 살아가는 인생을
온전히 느껴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