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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Apr 30. 2024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얼마 전에 '모순'이라는 책을 읽었다. 몇 년전에 별생각없이 읽었다가 너무 좋아서 한동안 모순앓이를 하며 주변에 추천을 많이 하고 다닌적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회자가 되길래 무심코 다시 읽어봤는데 양귀자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그때는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모의 선택이 무척이나 공감되고 지금 내 삶에서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소 충격적이라고 느꼈던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 또한 지금은 무난하게 수긍이 되는 걸 보니 이것이 소설이 주는 힘인가 느꼈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관점이 바뀌니 말이다.


나는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측가능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그래서 모험이나 도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한번도 혼자 살아본 적도 없고 같은 동네를 벗어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남들은 이직을 여러번 할 동안 나는 묵묵히 한 직장에 오래도록 다니고 있으며 오래된 관계 하나만 있으면 다른것들은 굳이 내 삶에 필요없다고 여기는 타입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나는 그것들을 모두 통제해야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려 결국은 내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 그런 관계에서 나에게 물러날 수 있는 힘을 갖는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내 인생은 남들 보이기에도 참 평온하다. 모든것이 다 적당하고 평범하다. 큰 굴곡없이 자라 온 가정환경과 타인이 무난하게 좋게 볼만한 인상과 적당한 직업을 가졌고 사회성도 무난하게 발달되어있다. 남들이 들으면 이런 인생을 사는 나는, 불안할 요소가 하나도 없는데 무엇이 나를 그토록 나를 변화하고 싶게 만드는지 반문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결핍은 있으니깐.



변화와 도전을 싫어하는 내가 여행을 할때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장소를 가는것도 싫어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게 내가 지금 사는 삶이 무척이나 단조로워서 오는 반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기회가 있을때 나는 최대한 에너지를 끌어올려 가장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 몇 달전 유럽여행을 다녀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여행은 내 오랜 소망 중에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나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나는 점점 확신을 얻게 되었고 모든것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치 이 길을 여러번 걸어본 사람처럼. 이번 여행만 다녀오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라는 마음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계속 올라왔고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도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갈 현실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귀한 선물을 나에게 준 내가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에 흘린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고 여겨지는 소식을 최근에 알게되었다.



1년 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0년 전에는 낼 수 없었던 용기를 곱씹어보며 아쉬워했던 기회를 이제는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막상 가보았더니 별거 아니더라 혹은 이건 내가 원하던게 아니었구나 라고 느낄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시도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만하고 나는 내 소명을 다했다라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실패가 결코 실패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책 모순에서 그려지는 안진진의 이모라는 사람은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삶을 산다. 모든걸 다 가진 부유한 중년의 여성의 삶으로 그려지지만 나는 그녀의 결핍과 삶의 무기력을 십분 이해한다. 내가 정말 모든 것을 다 노력해봤는데도 나의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좌절된 욕구로 이모는 자살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나를 이런 환경으로 몰아간 사람들에 대한 복수일까? 아니면 죽음마저도 완벽하길 바랐던 이모의 소망이었을까? 안진진의 엄마처럼 삶에서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이 바로 눈앞에 있으면 이모도 그녀처럼 기괴한 활력을 가지며 인생을 그렇게 마감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모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녀처럼 살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의 욕구와 감정을 바라보며 그것을 따라 충실하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한다. 나의 내면의 소리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은 내가 마음놓고 놀 수 있는 잔치가 되겠지. 그렇게 삶을 놀이처럼 대하는게 나에게 주고 싶은 가장 큰 메세지이다.



삶이 꼭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아도 돼.
무진장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충분해.



또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역시나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은 것에는 언제나 모든 모순이 담겨있으니 단면만 보고 절대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이것은 내가 비교라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큰 지표이다. 절대로 절대로 나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기에. 그리고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안진진의 마지막 말처럼 나 또한 내 안의 불씨를 가지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그렇게 가보자고. 그게 어떻게 나에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가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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