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사랑받고 싶었어.
어렸을 때 부터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였다. 학기초 자기소개를 해야하는 시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때면 내 심장은 미친듯이 요동치곤 했다.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수업이 가장 곤욕스러워 교수님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수업들을 일부러 골라 들었고 그것을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최대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다. 내성적이고 쑥쓰러움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딱 한번 자발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던 시절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손을 번쩍들며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임원 및 동아리도 운영하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나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외향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영향으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외향성과 친화성이 발현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새로운 사람을 주기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지금의 삶은 사람들에게 뺏기는 에너지가 적어서 좋다.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종종걸음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나에게 바깥에서 오는 자극을 줄이는 일은 내 안으로 중심을 가지고 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현재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서도 힘겨루기를 해야 할 때가 많으니 새로운 자극은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MBTI의 16가지 유형으로 한 사람을 규정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듯이 나의 다양한 모습안에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에너지를 얻고 싶은 욕구 또한 꽤 크며 요즘 부쩍 그 열망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스스로를 알아주며 내 안에서만 인정욕구를 채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거 못지 않게 바깥에서 오는 인정과 관심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혼자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는 편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독립적이고 무엇이든 혼자서 척척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처음 본 사람들이랑도 친근하게 소통하는 일에도 꽤나 능숙한 편이다. 오히려 관계가 오래된 사람들과는 그동안 맺어온 역할들로 인해 진솔한 속내를 이야기하는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기본적인 성향은 내향인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것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운 일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겐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사람들과 바깥에서 오랫동안 지내고 나면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모든 자극을
차단한 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그 시간.
그게 내가 다시 충전되고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최근에 잦은 모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원래는 항상 만나던 사람만 1년에 5~6번 정도 만나는게 전부인데 요즘에는 한 주가 멀다하고 연속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그동안 첫인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차분해보인다, 정돈된 느낌이다, 착해보인다' 등의 순한맛 투성이의 단어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요즘에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은 '외향적이다, 활발하다, 말걸기 어렵다' 등의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첫인상이랑 실제성격도 많이 다른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나에겐 꽤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내가 타인의 평가에 점점 집착하게 되면서 그것은 곧 지나친 인정욕구로 이어지게된다. 사람들의 말 한 마디, 심지어 내가 한 말에 하트버튼 하나 눌러주는 것만으로 내 기분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사소한거라도 기억해주고 말을 걸어주면 갑자기 그 사람이 너무 커보이고 좋아진다.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그렇게 많은 애정을 쏟았는데 그 사람은 정작 나에게 무심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오고 그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이어진다. 이렇게 상대는 별 의미없이 한 행동들도 확대해석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왜저러나 코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내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힘의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나를 알리고 싶지만 또 너무 지나친 관심은 내가 나로써 살지 못하고 그들의 욕구에 맞춰진 어떤 자아만 활동하게끔 인정해주는 것 같아 그것 또한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기에.
나는 아직도 그 언저리쯤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관심을 못 받으니 싫고
적으면 또 나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 같아서 싫고.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으면 좋겠는데
또 타인의 인정도 나에게는 절실하고
그래서 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개인의 역사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우주안에서 만큼은 언제나 타당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슬픈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진 나의 뿌리 깊은 신념들도 하나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사고할 수 밖에 없는 나를 또 한번 받아들이게 된다. 내 상상속에 심어놓은 나와 현실의 나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간극을 인식하고 이런 혼동의 순간들을 나는 기꺼이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하나 둘씩 받아들이면서 내가 느낀게 있다면 내가 만들어 놓은 알을 스스로 조금씩 깨고 나와 내가 원하던 일에 가장 나답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런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뜨겁게 언제나 응원하는 나를 마주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