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이는 글쓰기』-25

브레인스토밍은 무의식이 찾아가는 길이다

by 현목

브레인스토밍은 무의식이 찾아가는 길이다

글쓰기의 유용한 도구



2년 전인가 아이들에게 논술의 중요성을 얘기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 능력 밖인 걸 알면서도 단지 가장 기본적인 것만 전하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중에 이혁의 『논술의 정석』을 요약하여 내용은 전했습니다. 그 외 다른 책을 보았는데 ―책 이름은 잊었습니다―거기에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였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브레인스토밍은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마구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방법이다’라고 나옵니다. 주로 회사 같은 데서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이런 식으로 모집하여 새로운 상품이나 영업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쓰기에 좋은 방법이겠다 싶어 제가 주로 시라든가, 시적 산문을 쓰는 데 실제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글에 대한 착상이 잘 되어 술술 글이 나오면 굳이 이런 방법을 동원할 것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주제는 정했는데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아이들이 여름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 왔을 때 시간을 내어서 테스트 겸 실제로 글쓰기를 해보았습니다. 우선 집에 있는 오디오를 이용하여 루돌프 부흐빈더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일명 ‘문라이트’를 들려주었습니다. 1악장이 6분, 2악장이 2분, 3악장이 5분으로 총 13분이 소요됩니다. 각 악장을 듣고 각자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이미지를 무엇이든지―엉뚱한 것일수록 좋으니까―노트에 적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연주를 다 듣고 나서는 각 악장마다 자신이 브레인스토밍한 것을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자신의 노트에 적힌 이미지들은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 재료에 해당합니다. 그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다시 말해 문장을 구성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문맥이 맞는지 여부는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고쳐쓰기에 가서 하면 됩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풀어놓은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개체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줄기가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브레인스토밍으로 지은 글이 처음에는 뒤죽박죽 같아 보여도 정리를 하면 거기에는 의미가 담깁니다.


브레인스토밍의 유용한 점은 글쓰기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도저히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제게는 무척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 시쓰기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요즘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미 이런 식의 브레인스토밍을 이용한 글쓰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손주가 브레인스토밍한 것읊 제가 실제로 브레인스토밍하여 쓴 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Brain Storming

1악장(6분): 어둠 속에 혼자 서 있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 쓸쓸하다. 삶은 꿈을 꾸고 있다. 머리가 이별 속에서 온다. 비밀의 문앞에 있다. 연인과 헤어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산 정상이 아직 많이 남음. 앉아서 좌절 중. 의식을 잃고 있다. 길을 잃어버렸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데 눈물이 나옴. 고독하게 산책.


2악장(2분): 아침에 새가 운다. 핸드벨. 연극. 구술. 물방울. 나들이. 잔디. 청량한 숲. 경쾌하게 걷다. 느긋하게 게임을 한다. 조용한 동물원에 옴.


3악장(5분): 심장이 요동친다. 터질 것 같다. 시속 50킬로미터로 뛰고 있다. 죽음의 사신. 칼. 시험 칠 때. 번지 점프. 지진. 화재. 호랑이 마주침. 토네이도가 오다. 소나기가 창문을 두드림. 깜깜한 학교. 귀신. 엄마한테 혼남. 뒤에서 화살이 날아옴. 게임에서 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살인 사건. 응급실. 큰 수술. 엄마 뭔가를 함. 종이에 손 베임. 낭떠러지. 동굴. 사망.

*

1 어둠은 혼자가 아니다. 어둠과 같이 있어도 가망은 돛단배를 타고 가물가물 멀어진다. 내 삶은 꿈속에서 걷고 있다. 이별이 내 머리 속에서 걸어나온다. 비밀로 들어가는 문앞에서 나는 멍청히 서 있다. 연인과의 헤어짐이란 나뭇잎이 떨어짐이다. 헨드폰이 떨어지면서 내 이별을 소리친다. 산 정상은 걸으려면 아라비안 나이트가 되어야 한다. 좌절은 나를 서 있지 못하게 하고 앉으라고 한다. 의식이 길을 잃었다. 나오는 눈물이 눈앞을 막았다. 산책하는 나에게 고독이 질리도록 따라오면서 중얼거린다.


2 아침에 새가 우는 울음은 아지랑이다. 핸드폰 벨이 새울음을 간지른다. 연극은 절망이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은 구술이 되어 동그랗다. 물방울이 내 심장을 씻어주고 더 뛰라고 말해주고 사라진다. 오랜 만의 나들이가 벌써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내 발밑의 잔디가 내 발밑에서 웃고 있다. 청량한 숲이 나를 포옹한다. 경쾌함은 흔들 의자가 되었다. 느긋하게 하는 게임에게 산들바림이 와서 딴청을 한다. 이제는 조용한 동물원에 가서 수리 부엉이에게 물어보아야겠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3 심장이 내 걸어온 길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요동치며 소리친다. 발은 이미 시속 50킬로미터의 등짝에 올라탔다. 죽음의 사신이 놀라서 제 창을 떨어뜨렸다. 번득이는 내 심장의 칼은 나의 허망을 잘라버릴 것이다. 인생의 시험이란 헛된 종이조각이다. 번지 점프하는 것은 내 인생이다. 내 슬픔을 찢어 놓는 지진이 시작되었다. 타오는 불 속에서 소멸하는 그대여. 호랑이는 나의 긍지이다. 깔때기 모양의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내 생명이다. 소나기가 내 잠속에 찾아와서 창문을 두드린다. 깜깜한 학교에 내 추억을 다 묻어버렸다. 꿈에 만난 엄마가 나의 짓거리를 손가락질하고 있다.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하는 화살은 뒤에서 숨통을 노리고 있다. 나의 좌절은 게임 속에서 울고 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음은 나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신호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미 저 너른 강으로 자유하게 했다. 응급실에 가는 것은 사춘기이다. 내게 남은 큰 수술은 결단이다. 엄마가 꿈속에서 뭔가 말하는 따뜻함을 타고 나는 하늘을 오른다. 종이에 손을 갖다댐은 혈서를 쓰는 것이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은 새로운 대류에서 놀기 위한 결단이다. 동굴의 어둠을 내 마음의 한구석에 있다. 죽음은 내가 걸어가는 하나의 불빛이다.


브레인스토밍은 시쓰기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겨울비‘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다고 합시다. 어떤 시상이 떠오르면 그대로 쓰고 진행을 해나갑니다. 그러다가 별로 시상이 안 떠오르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곡‘을 브레인스토밍 했듯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봅니다. 예를 들어, ’쓸쓸하다, 어둡다, 기적소리들린다, 낙엽이 구른다, 마음이 젖어있다,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립다, 무언가 뜨거움이 올라온다, …… 등등을 써놓고 이미지들을 연결하든지, 혹은 한 단어를 가지고 종합명제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어 봅니다. 모아본 것 중에 ‘겨울비’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은 과감히 버립니다. 정리하여 하나의 주제 즉 ‘겨울비’에 맞는 이미지만으로 정리하여 완성합니다.


‘브레인스토밍’은 잘만 이용하면 글쓰기의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