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싫어할 이유가 있었나

by 현목

진례 와서 몇 개월 살면서 당직 서고 난 다음 날은 반차(半次)이기에 여기저길 쏘다녔습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상촌 하촌을 더듬다가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평지 마을 저수지를 도는 데는 한 삼십 분이면 족한 것 같애 짧아서 아쉬웠지만 대신 백숙으로 식욕을 채워줬습니다. 진례의 맛집을 찾아다니느라고 어탕국숫집도 갔고 옹기 짜장면 집에 가서 오향장육에 정말 몇 년만에 싸구려 이과두주(二鍋頭酒)도 마셔보았습니다. 아참 다슬기탕도 있었군요.


진례에서 벗어나서 김해 수로왕릉, 김해국립박물관, 대성동박물관도 다녀왔습니다. 김해 박물관의 도기들은 무식한 제 눈에도 오랜 역사의 깊이와 무게가 묻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름을 알은 해반천을 걷기도 했습니다. 장유 율하의 카페 거리는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가 볼 만했습니다. 우선 양쪽에 벚나무가 길을 감싸고 있어 시원했고 왼쪽에는 아파트와 율하천, 오른쪽에는 카페들, 어찌 보면 도심 속의 길 같아서 자동차 소리도 들려 시끄러울 것 같은데 깊은 산속처럼 조용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길이 매력적이라고 해도 그 길이가 대개는 짧습니다. 이 율하의 길은 한없이 길었습니다. 율하천에서 시작해서 롯데아웃렛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거기서 더 가면 해반천으로 연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날 반차 내고 갈 데가 없어서 진례에 가까이 있는 화포천습지 생태공원으로 갔습니다. 입구에 습지생태박물관만 뎅그러니 있고 변변한 음식점도 없어서 웬지 생뚱 맞았습니다. 오른쪽에는 벚나무 길이 있는 것 같은데 그쪽을 피하고 왼쪽으로 향했습니다. 6월의 땡볕에 나무도 거의 없고 습지에서 자란 키 큰 풀만이 길 양옆으로 무성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걷는 것이 목적이니 그저 생각없이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보기에 그다지 부티가 나지 않는 절이 있었고 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이른바 ‘노무현대통령 생가’로 간다는 표지가 있었습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진례로 들어오면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세 갈래 길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노무현생가’라는 표지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도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하면 거의 개인적으로는 관심 밖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진례에서 가깝다는 봉하마을로 가야 할 아무런 필요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길에서 조금 내려가는 길목에 ‘대통령의 자전거길‘이란 표지가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들어서니 그곳은 어른 한아름 정도의 폭이었고, 양쪽은 키높이의 잡풀들이 무성한 좁다란 길이었습니다. 여길 노무현이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그곳은 한적하고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고 허위를 용납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이었습니다. 노무현은 자기가 누린 권력 같은 길이 위에 있는데도 굳이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거칠 것 없는 아스팔트 길을 달리면 바람도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을 즐긴다면 그 스스로 자기 생애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갑자기 그가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좁다란 대통령의 자전거길은 시간 나면 다시 혼자서 걸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드디어 봉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왼쪽으로 커다란 ’노무현 기념관이 보였습니다. 오른팔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살면서 그를 별로 좋아한 적이 없는 제가 굳이 거길 들어가서 그가 살아온 모습을 본다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거길 외면하고 조금 올라가니 사람들이 헌화하는 국화송이도 팔고 봉하마을 빵도 팔고 카페도 있고 어쩐지 어수선했습니다. 이것도 관광상품화해서 수익을 얻자는 사람들이 있는구나 하였습니다.


갑자기 웬 초가집이 나타나더니 ‘노무현 대통령 생가’라는 표지판이 앞에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손질한 초가집의 한가운데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안에는 벽에 옛날 사진들을 넣은 액자가 걸려 있었고 탁자에는 붓들이 붓통에 꽂혀 있었습니다. 옆에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구멍에 엉덩이를 내리고 똥을 누면 똥이 내려가 퍼석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냄새나고 더럽기보다는 그 옛날의 똥간이 그립기조차했습니다. 노무현이 여기서 태어나서 진영의 국민학교 중학교를 나오고 부산 가서 부산상고를 다녔다는 말이지. 여기서 부산까지 유학을 할 정도면 잘 살았다는 말인가. 알다시피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시공부할 때 저의 고등학교 동기들과 어울려 공부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초가집에서 태어나 부산 가서 고등학교 나와서 고시 패스하고 정당활동하다가 대통령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을 보면서 웬지 가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 묘역이 이 근처에 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광장 같은 데 사람들이 몇몇씩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옆으로 대통령이 산책을 했다는 오솔길이 산속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습니다. 거길 힘들게 올라가면서 그가 여길 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도 궁금했습니다. 대통령 묘역은 두 번째 방문 때 알게 됐습니다. 근처에 있는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지난번에 보았던 그 광장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대통령 묘역이라면 당연히 수로왕릉처럼 거대한 산소를 상상했던 것입니다. 커다란 주황색 쇠판 위에 겨우 한아름 될까 하는 돌이 놓여 있었고 그 돌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세로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단촐함에 오히려 당황하게 됐습니다. 서민 대통령이라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면서 “내가 왜 노무현이를 싫어 했지?” 하고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피난민 2세입니다. 자연히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기피하였고 나중에 커서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저 소위 우익이라는 정당에 투표했습니다. 제가 마르크스를 읽어본 적도 없었고 사회주의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이나마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저쪽은 악이고 이쪽은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도적이지는 아니지만 저의 직업도 자연히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보니 노동자의 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들의 삶의 고달픔에 대한 연민도 없은 셈입니다.


노무현은 이른바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의 약력을 보면 그다지 볼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의 단순 순진함과 용감함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용감했던 것입니다. 그가 2009년 5월에 일련의 돈에 얽힌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봉하마을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로 모든 시비를 종결시켰습니다. 자살을 칭찬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는 참으로 깨끗한 사람 같아 보입니다. 부정 시비에 얽힌 정치인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처신하는지는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는 어찌 보면 일본의 무사도 같기도 하고 일본말로 앗사리(あっさり)한 성격의 소유자 같습니다.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배신자가 징글맞게도 지글지글하게 많은 세상에서 그의 성품은 고결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의 유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노사모에 가입하는 거 아냐?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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