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초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 5분쯤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진주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를 타고 가다가 사천으로 접어드는 인터체인지에 이르렀습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들어서자 마자 차들이 정체해서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사천 톨게이트 부근으로 들어가는 지점에서 차사고가 종종 일어나므로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이 합류지점은 대전통영 쪽으로 가다가 사천으로 접어드는 길과 부산진주 쪽에서 오는 길이 서로 합류하므로 한참 가다가는 2차선 중에 오른쪽에 있는 차선은 점점 좁아지고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이니까 근무처로 가느라고 모두 바쁜 마음인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좁아져 없어지는 차선으로 차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오더니 깜박이를 오른쪽으로 넣고는 ‘차대가리’를 들이밀기 시작합니다. 순간 짜증이 났습니다. 이제 기다리느라고 10분, 15분이 지나는데 갑자기 제일 꼴찌에서 진입한 차들이 순서대로 들어오지 않고 이른바 ‘새치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치기는 법적으로는 걸리지 않으니 개인의 도덕에 관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저도 완전무결하게 도덕적으로 행동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사소하지만 깜박이도 켜려고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우회전 좌회전 하는데 깜박이 안 넣는다고 법에 걸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나는 이쪽으로 가니 알아서 하세요 하는 배려는 된다고 봅니다.
거의 30년 전에 처음 일본에 관광여행을 가서 겪은 경험이 가끔 생각납니다. 도쿄에서 교토로 가는 중간인가에서 관광버스가 너무 천천히 가서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창문을 내다보니 반대쪽 차선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데도 그저 앞차만 따라가는 버스를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벌써 왼쪽 깜박이(일본은 오른쪽 깜박이겠지만)를 넣고 중앙선을 넘어서 가다가 다시 본래의 차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도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도 이것 저것 꾹 참고 옆에서 새치기하고 앞서 가는 차를 외면하고 있으려니까 유조선 차 같은 것이 제 앞에서 무조건 ‘차대가리’를 들이밀고 동시에 부산 사천쪽으로 오는 남해고속도로 쪽에서 오던 짐차가 제 차의 왼쪽에서 역시 ‘차대가리’를 박고 박으려면 박아라는 식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순간 부아가 나서 크락션을 크게 울리고 바짝 쫓아가다가 말았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내가 그 차들을 들이박는 꼴이 되어 제가 덤태기를 홈빡 쓸 판이었습니다.
단군의 자손이 분명히 머리는 좋아서 2차세계대전 이후에 한국처럼 발전한 나라가 별로 없다고 자랑하지만 도덕적 역량도 과연 그것에 걸맞는지는 차를 타고 출퇴근할 때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이 차도에서의 운전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합니다.
20여 분이 지나서 차들의 정체를 지나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갑자기 감정과 이성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차들이 뒤죽박죽 되는 동안 짜증을 내며 분노했던 것은 감정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 앞에 차들이 ‘차대가리’를 들이박는 것을 안달하든 말든 소요되는 시간이라는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정을 내지 말고 그저 담담히 이성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기다렸으면 내가 클랙션을 울려대는 일도 없이 유유히 대인(?)처럼 톨게이트를 빠져나왔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못마땅해서 싱싱 끓고 나서 들어오니 기분도 찝찝하고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칸트는 인간의 정신을 감성(감정)과 상상력과 지성과 이성으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지성이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료들을 인식하는 정신입니다. 이러한 지성의 자료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이성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들이 정체되는 사태를 보고 인식하고는 그것을 냉철히 사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천박한 새치기를 투덜거리면 저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만 소모하고 만 셈이었습니다. 그것도 톨 게이트를 지나는 순간에 감정을 부리지 않아도 결과는 똑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오히려 그들이 새치기를 하면 그래 너희가 바쁘니까 그랬겠지 하고 여유을 가지고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면 저에게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유익했을 것이란 아쉬움을 가지고 직장으로 가는 길로 차를 몰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