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이 썰물로 지나간 뒤
폐허가 된 내 몸
어디로 떠나갈지도 모를 배 속에 누운 나를
영정이 웃고 있네
마지막 생명의 무게를
후들거리던 다리로 간신히 지탱하던
마른 잎사귀처럼 나둥거러진 나를 앞에 두고
울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보고
영정이 웃고 있네
내가 남긴 조니 워커 술을 마시며
식도를 울컥 뜨겁게 하는
이별을 고하는 친구들을 보고
영정이 웃고 있네
꽃상여 앞세우고
산하에 가물가물
잦아드는 만가(輓歌) 소리 보고
영정이 웃고 있네
싯뻘건 황토속으로 내려지는
쉰일곱 평생 내 몸
사랑도 인연도 고통도 그리고
나도 나를 떠나가버린
빈 새집 같은 나를 보고
영정이 웃고 있네
바람처럼 쓸쓸히 흩어지는
일가친척 피붙이를 보고
우주에 어깨를 짚고
영정이 활짝 웃고 있네
*2000년 KBS2 인간극장 ‘그리운 사람 송우’